朴·文의 국회법 '전면전'… 與는 청와대 압박에 '순응'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단단히 벼르고 나선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단호한 어조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은 그은 뒤 경우에 따라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공무원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 공무원연금과 관계 없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 문제를 연계시켜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는데 이것은 정부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서 걱정이 크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에서 정부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히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 취지는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그리고 우리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넘어오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은 격하게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가 좀 심하다고 생각한다"며 "입법권은 기본적으로 국회에 속하는 것"고 밝혔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불사' 발언에 대해 "입법부와의 전쟁 선포로 받아들여진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삼권분립을 위배하는 건 행정부며 국회법 개정안은 훼손된 삼권 분립을 바로잡기 위한 입법부의 노력"이라며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입법권을 침해하는 행정부에 대해 삼권분립 위배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청와대를 공격했다.

이와 함께 "삼권 분립을 해치는 정부의 잘못된 행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며 국회법 개정안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211명이 찬성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외형적으로는 청와대와 새정치민주연합의 대결이자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의 전면전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발언은 일단 여야가 다시 논의해 철회하던가, 아니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강경한 야당과는 달리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기세에 눌린 모양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론과 함께 삼권분립 위배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크라우드펀딩법 등 국회에 계류 중인 일자리 창출 법안과 관련 야당에 대토론회 개최를 제안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일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와 관련해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충분한 검토의 결과로 말씀하신 걸로 생각을 한다"면서 "대통령과 우리 당의 뜻이 다를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중요한 것은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이 위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는 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당 기구에서 균형감각 있는 헌법 학자들을 불러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의 입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해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여야 각 당이 내부적으로 의총 등의 절차를 통해 의논하고, 투표는 자유투표로 한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이병기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이러한 입장을 정리한 뒤 청와대의 뜻을 김무성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즉각 반발하지 않고 청와대의 뜻을 수용하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말미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서 수습책을 잘 모색해 보겠다"고 말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김태호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위원이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비판한 데 대한 대응적 차원의 발언이었다.

김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국회법 수용 불가' 방침을 거스를 수가 없는 당 내 역학구조다.

친박의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반기를 들고 있고 이정현 최고위원과 윤상현, 김재원 의원 등이 그런 기류를 주도하는가 하면, 김태호 최고위원마저 친박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 1일 오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시행령 수정 요구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친박계는 특히 2일 긴급 모임을 열어 '국회의 행정입법 수정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발하려 하고 있다.

제정부 법제처장의 국회법 개정안 논란에 대한 발표를 들은 뒤 친박계 의원들의 직접 토론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위헌론과 삼권분립 훼손론을 위주로 한 반대 여론 형성 의도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당 지도부를 공격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조해진 원내수석 부대표 등 협상파들이 청와대를 보호하려는 친박 주류들과 정면 승부를 벌이지 않으려면 일보 후퇴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이며 지난달 29일만 해도 "위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던 유승민 원내대표도 한 발을 뺄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여의도와의 전면전에서 일단 기선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무기를 바탕에 깔고, 친박 의원들을 내세워 김무성·유승민 체제를 포위했다.

특히 청와대는 야당을 중심으로 한 여의도가 행정부 권한을 축소하려한다는 정치적 명분도 선점했다.

박 대통령이 '수용 불가'라는 배수진을 치고 나온 것은 승산 있는 승부라는 나름의 판단을 내린 이후의 결단으로 비춰진다.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가 재투표에 들어가 통과시킬 경우 박근혜 정부는 '식물정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정면 승부, 정치적 도박을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130석의 야당으로선 재적 의원 3분의 2인 200표를 결코 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새누리당 의원 70여명이 대열에서 이탈해야 가능한 2/3(200석)인 관계로 야당의 승리를 담보할 수 없는 전면전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나온다.

당장 여당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성이 없다'(유승민 대표)는 쪽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강제성이 없을 경우 국회법 자체가 효력이 없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 있어 청와대로서는 굳이 강력한 대응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야당의 반발 강도가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표의 선택과 결단이 주목된다.

당장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와 임명동의안, 6월 국회의 민생법안 처리 등이 교착상태에 빠질 우려가 한층 커졌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 처리가 모처럼 사회적 대타협의 기회를 조성하고 원만한 여야관계를 모색했다는 '보이지 않는 공로'가 청와대와 국회의 권한 쟁탈전으로 말미암아 포말처럼 사라져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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