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태도를 돌연 바꾼 것이다.
계속해서 압박성 재료를 내놓으며 '살라미 전술'을 펴는 엘리엇에 맞서 삼성이 '연막 전술'을 펴는 것일까.
타이밍은 아주 절묘했다.
제일모직과 합병 관련 임시 주주총회(7월 17일) 확정을 위한 주주명부 폐쇄 하루 전인 10일 전격적으로 매각을 결정했으니 말이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는 제3자에 팔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자사주 매각 결정을 내린 것이 사외이사들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지난 10일 이사회가 열리기 전 사외이사들이 모여 미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처분하는 안을 마련했다. 이사회는 사외이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사주 매각을 결정했다.
대주주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막기위해 존재하는 사외이사들이 오히려 회사의 소중한 자산을 팔라고 독려한 셈이다.
대주주 경영권 확보를 위한 자사주 매각이 배임 등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전략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자사주 매각은 이사회를 통해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진 것이지 사외이사들이 결정했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자사주 매각 정보가 시장에 미리 샌 것일까.
8~9일 65만 주나 순매도하던 기관투자가들이 이날 삼성물산 주식을 116만주나 사들였다.
이는 지난달 26일 제일모직과 합병 발표 다음날인 27일 순매수한 119만주와 3만주 차이에 불과하다. 합병같은 대형 호재와 맞먹는 호재로 본 것이다.
기관의 매수세는 삼성 이사회가 끝난 직후부터 집중됐다.
기관이 삼성의 편에 서자 엘리엇도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을 불법 행위라고 규정, 이를 막기 위한 법적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11일 밝혔다.
자사주 매각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엇갈린다.
지난 2006년 대림통상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각과 관련해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회사 전체의 재산인 자사주를 대주주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는 매각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물론 이 같은 행위가 합법하다는 판례도 많다.
자사주 못지 않게 소액주주들도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은 일부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이번 분쟁을 '합법의 엘리엇과 탈법의 삼성'간 대결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소액주주 지분의 0.4%이상이 엘리엇 측으로 등을 돌렸다.
0.4%는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지분(1.37%)의 3분의 1에 이르는 물량이다. 공개적으로 삼성물산에 반대의사를 표한 네덜란드 연기금 지분(0.2%가량)의 2배가 넘는다.
어느쪽의 승리를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주주 자본주의'를 이번 기회에 실현해 보자는 소액주주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삼성은 간과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