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날 두산은 선발 대결에서 객관적으로 열세에 가까웠다. 좌완 선발 진야곱(26)은 올해 2승2패 평균자책점(ERA) 6.21로 LG 헨리 소사의 5승5패 ERA 3.64에 적잖게 뒤졌다.
이를 알고 한 어쩌면 마음을 비운 호언장담이었다. 김 감독은 "오늘 야곱이가 잘 던져서 이길 것"이라면서도 "비가 와서 취소되면 어쩔 수 없고…"라며 더그아웃에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현실적으로 밀리는 카드인 만큼 우천 취소를 은근하게 바라는 마음이었다.
여기에 두산은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의 부상 공백으로 선발진에 구멍이 난 상황. 이날 경기가 취소되면 진야곱이 주말 NC와 3연전에 등판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김 감독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진야곱은 김 감독의 농담 짙은 호언을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데뷔 후 최고의 투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47개를 던진 직구 최고 구속은 147km까지 나왔다. 최고 137km를 찍은 슬라이더(32)는 날카롭게 존을 파고들었다. 최저 120km까지 떨어진 커브는 상대 타이밍을 뺏었다. 87개 공 중 스트라이크가 61개에 이를 만큼 안정적인 제구였다.
LG 에이스 소사와 선발 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소사는 6⅔이닝 12피안타(1홈런) 1탈삼진 2볼넷 6실점으로 무너졌다. 투구수는 109개였다.
이전까지 진야곱의 한 경기 최다 이닝은 지난 4월 25일 잠실 KIA전이었다. 당시 5⅔이닝 4피안타(1홈런) 6탈삼진 4볼넷 2실점 호투했다. 그러나 승패 없이 물러났고, 팀도 졌다.
그런 진야곱이 지난 2008년 데뷔 후 최고의 피칭을 펼친 것이다. 9탈삼진도 기존 6개를 넘어 개인 최다 기록이다. 지금까지 진야곱은 통산 53경기에 선발 출전이 12번째였다.
허리 부상으로 2군에 오래 머문 진야곱은 지난해 경찰청에서 제대한 뒤 고질이던 제구력을 가다듬고 올해 합류했다. 5선발과 불펜을 오간 진야곱은 데뷔 7년 만에야 비로소 인생투를 펼친 것이다.
두산 타선도 초반부터 점수를 뽑아내며 진야곱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1회 양의지의 선제 1타점 2루타와 2회 오재일의 개인 통산 첫 3루타에 이은 정수빈의 적시타로 앞서간 두산은 4회 홍성흔의 시즌 2호 홈런, 5회 로메로의 2루타로 4-0까지 점수를 벌렸다. 7회도 로메로의 희생타와 양의지의 적시타로 2점을 추가, 쐐기를 박았다.
두산이 6-0 영봉승을 거두면서 진야곱은 시즌 3승째를 뿌듯하게 수확해냈다. 자칫 우천 취소가 됐다면 나오지 않았을 진야곱의 인생 경기였다.
경기 후 김 감독은 "진야곱이 호투한 부분보다는 마운드에서 보여준 여유있는 모습이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고 기뻐했다. 양상문 LG 감독도 "상대 투수 공략에 실패해서 졌다"고 패인을 밝혔다.
진야곱은 "6회 연속 볼넷을 내줬을 때 위기가 왔는데 감독님이 믿고 맡기셔서 넘길 수 있었다"면서 "개인적으로 볼넷이 적은 게 가장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감독님 믿음에 부응해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제구를 유지해 좋은 투구를 펼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