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아, 그 많던 두산 영건들은 어디 갔을까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선후배 몫까지 내가' 두산은 임태훈, 진야곱, 이용찬, 서동환, 성영훈(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2000년대 중후반부터 초고교급 투수들을 영입했지만 이들을 정상급 투수로까지 키워내지는 못했다.(자료사진=두산, 삼성)
프로야구 두산을 흔히 '화수분 야구'라고 하죠. 재물이 끊임없이 솟구치는 보물단치처럼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끝없이 배출된다고 해서 얻은 별칭입니다. 두터운 선수층으로 다른 구단의 부러움을 받는 두산의 2군 훈련장 경기도 이천 베어스파크는 화수분 야구의 산실쯤 될 겁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시설과 시스템이 갖춰졌다고 해도 인재가 없으면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만큼 두산은 좋은 재목들을 발굴하고 끌어모으는 데도 역량을 집중시켜왔습니다. 고교 유망주들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스카우트해온 게 화수분 야구의 또 다른 원동력일 겁니다.

간판 스타 김현수(28)의 신고 선수 신화는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힙니다. 지금은 NC 소속이지만 이종욱, 손시헌 역시 두산에서 신고 선수 신화를 썼습니다. 이밖에 양의지, 최주환, 최재훈, 허경민 등이 화수분에서 나고 자란 주축들입니다.

그런 두산이지만 모두 성공 스토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투수 농사에 있어서는 두산도 별 재미를 보진 못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특히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선수들을 주전급으로 키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두산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거물급 신인 투수들은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두산, 역대급 초대형 신인 투수 운집

사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두산은 역대급 황금팔들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초고교급으로 불리던 영건들로 향후 구단의 10년 이상을 책임질 동량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2005년 1차 지명 김명제(28)와 2차 1라운드 2순위 서동환(29)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이들은 각각 계약금 6억 원과 5억 원에 입단한 정통파 우완 듀오였습니다.

이듬해 두산은 류현진(LA 다저스), 차우찬(삼성)과 최고 좌완으로 꼽히던 남윤희(현 남윤성)를 놓치긴 했습니다. 본인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지가 강했기 때문입니다.(두산의 1차 지명을 뿌리친 남윤성은 텍사스 마이너리그에서 뛰다 방출됐고, 국내 복귀해 독립 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뛰다 군 복무 중으로 알려졌습니다. 두산 관계자는 "계약을 했다면 못해도 5억 원 이상은 받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두산 신인왕 듀오' 2007년 1차 우선 지명 입단 동기로 각각 07년과 09년 신인왕에 올랐던 두산 임태훈(오른쪽)과 이용찬.(자료사진=두산)
하지만 큰 타격은 없었습니다. 2007년 1차 우선 지명으로 우완 듀오 이용찬(26)과 임태훈(27)을 한꺼번에 영입한 겁니다. 둘은 각각 계약금 4억5000만 원과 4억2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2008년 좌완 진야곱(26)이 2억 원에, 2009년에는 우완 성영훈(25)이 5억5000만 원에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했습니다. 이 시기 두산처럼 대형 신인 투수들이 한꺼번에 몰린 사례가 또 있을까요?

이들은 나름 활약을 펼치며 이름과 몸값을 해내는 듯싶었습니다. 김명제는 05년 첫 해와 08년 7승씩을 따냈습니다. 임태훈은 07년 7승3패 1세이브 20홀드 평균자책점(ERA) 2.40으로 신인왕에 올랐습니다. 친구 이용찬 역시 09년 구원왕(26세이브)에 올라 늦깎이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불운한 결말과 힘겨운 재기의 과정

하지만 두산의 영건들은 현재 불운한 결말을 맞았거나 힘겨운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입단 당시 찬란할 것만 같았던 청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김명제는 2009시즌 뒤 음주교통사고로 경추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눈물겨운 재활로 재기를 도모했지만 방출돼 야구 인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다만 김명제는 장애인 테니스 선수로 전향,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입단 동기인 서동환은 2승4패의 성적만 남긴 채 2013시즌 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습니다.

두산 김명제는 불의의 사고 이후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변신해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자료사진=대한테니스협회)
그나마 성적은 2007년 입단 동기들이 나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임태훈은 2009년 11승, 이듬해 9승을 따내며 선발과 불펜 전천후 활약을 펼쳤습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사 문제로 정신적으로 흔들린 가운데 2011년부터 4시즌 동안 6승6패 7세이브 4홀드에 그쳤습니다. 임태훈은 올해도 1군 등판이 한 차례도 없이 2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용찬 역시 신인왕 이듬해인 2010년에도 25세이브를 따내고 2012년 선발로 10승을 따내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음주운전이 적발됐고, 지난해는 금지약물 복용으로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명단에 들지 못해 현재는 상무에서 복무 중입니다.

성영훈은 2010년 고질이던 팔꿈치 문제로 수술을 받고 군 입대했습니다. 2013년 복귀했지만 지금까지도 재활에 힘쓰고 있습니다.(성영훈은 임태훈과 함께 직접 인터뷰를 했던 선수라 더 마음이 쓰입니다.)

▲진야곱이 던진 희망투 "힘든 시간 떨칠 것"

이런 가운데 진야곱이 의미 있는 투구를 펼쳤습니다. 11일 잠실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LG와 원정 경기에서 7이닝 9탈삼진 2피안타 2볼넷 무실점 쾌투로 팀의 6-0 영봉승을 이끌었습니다.

두산 진야곱이 11일 LG와 경기에서 변화구를 구사하고 있는 모습.(잠실=두산 베어스)
2008년 데뷔 후 최다 이닝과 탈삼진의 인생 경기. 2007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시속 150km대 강속구를 뿌리며 초고교급 투수로 주목받았던 그가 7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입증한 역투였습니다. 최고 구속 147km에 슬라이더가 예리하게 꺾였고, 고질이던 제구도 잡혔습니다.

진야곱도 앞선 두산의 영건들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첫 해 33경기 2승 ERA 4.45로 데뷔 시즌을 마친 진야곱은 이듬해 7경기 1패 1홀드에 그쳤고, 2010년에는 1경기에만 나섰습니다. 허리 부상 재활과 경찰청 복무 등으로 올해에야 다시 1군에 복귀했습니다.

경기 후 진야곱은 "힘든 시간이 길었다"고 7년 세월의 마음고생을 털어놨습니다. 그러나 "다들 자신이 한 고생이 가장 힘들다고 여기지만 2군에는 나보다 힘든 선수들이 많다"며 성숙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경기를 통해 확실하게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매 경기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고 이를 앙다물었습니다.

그 많던 두산의 영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만약 이들 중 1~2명만 이른바 포텐이 터졌다면, 꾸준하게 성장해 특급 투수로 거듭났다면 두산은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마지막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제 진야곱 하나만 남았습니다. 물론 이용찬이 제대하고 임태훈과 성영훈이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사건 없이, 또 큰 부상 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온 진야곱인 만큼 그 기대는 더욱 큽니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두산 진야곱이 11일 LG와 경기에서 인생투를 펼치고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친 뒤 향후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잠실=임종률 기자)
p.s-진야곱은 11일 경기 후 그라운드에서 진행된 중계 방송 히어로 인터뷰를 마친 뒤 곧바로 라커룸으로 향했습니다. 이를 본 저를 포함한 10여 명 취재진이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서야 진야곱은 비로소 더그아웃으로 왔습니다. 중계 인터뷰 뒤 야구 기자단과 인터뷰를 하는 절차를 몰랐던 겁니다.

진야곱은 "중계 인터뷰는 해봤는데 이렇게 많은 기자분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황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어 "제가 잘 몰라서 그냥 들어가려고 했는데 죄송하다"고 수줍게 말했습니다.

생애 첫 기자단과 심층 인터뷰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향하던 진야곱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 묻자 "예전부터 기독교 집안이라 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고 답했습니다. 옆에 있던 두산 관계자는 "정말 독실한 크리스찬"이라면서 "진짜 순박하고 착하다"고 보탰습니다.

종교를 말하자는 게 아니라 그 심성을 강조하려는 겁니다. 진야곱의 호투가 일회성이 아니라 앞선 두산 영건들의 몫까지 해낼 수 있도록 꾸준하게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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