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때문에…정부 또 '마이너스통장' 손대나?

메르스 불안감 커지면서 금리인하 이어 추경예산 논의 불붙어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우측)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방문한 병원 24곳 명단 등을 공개하며 메르스 대응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최근 우리 경제지표에서 그나마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것이 바로 '소비'였다. 생산과 투자지표가 들쭉날쭉했지만 월별 소매판매 만큼은 지난 2월부터 전년 동기대비 증가세를 계속 유지해왔다. 정부는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소비회복세가 생산과 투자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올해 2분기는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타느냐 마느냐 하는 주요한 분기점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른바 '최경환 노믹스'를 앞세워 지난 1년간 수십조원의 자금을 풀고, 각종 대책을 발표하며 어렵사리 일으킨 회복세는 메르스 사태로 단번에 꺾이는 모양새다.


이미 외국인 관광객들이 10만명 이상 한국방문을 취소했고, 시내 면세점과 호텔 등 관련 업계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금 당장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다 하더라도 다음달까지는 예약취소 등의 여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다가 불안이 높아진 국민들이 나들이와 바깥출입을 삼가고, 장보기 등 소비 활동마저 자제하면서, 내수는 또다시 침체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방역당국은 물론 정부 경제팀도 메르스 사태에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메르스로 불안한 한국 경제, 금리인하에 추경까지 호출

결국 침체 국면으로 빠지려는 경기를 방어하기 위해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이 먼저 구원투수로 나섰다. 이미 1천조원을 다시 돌파한 가계부채의 부담까지 무릅쓰고 기준 금리인하라는 극약 처방을 제시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4차 감염자까지 나오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은 결국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카드까지 끌어내고 있다.

금리 인하가 가계부채라는 뇌관을 건드릴 위험을 감수한 처방이라면, 나라 곳간을 열어 수십조원의 돈을 추가로 시중에 풀어내는 추경예산 카드는 나라빚을 늘려 미래세대의 부담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극약 처방이다.

이미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채무는 500조원을 넘었다. 여기에 미래에 지출해야할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 충당부채까지 감안하면 나라 빚 규모는 1200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추경을 하려면 마이너스 통장이 된지 오래인 대한민국 정부 통장에서 또 대출을 내서 써야 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한민국 통장에 입금되는 돈, 즉 세금수입은 3년 연속으로 결손이 났다. 대출액과 이자는 계속 늘어나고 수입은 줄어드는 상황, 즉 우리 정부는 지금 '숨만 쉬어도' 마이너스가 늘어나는 통장을 들고 있는 셈이다.

◇ 어려운 재정상황 속 추경예산 필요한가...찬/반 분분

이런 상황에서 추경 예산 편성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매우 조심스럽고 의견도 분분하다.

먼저 추경의 효과는 미미하다는 의견이다.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은 지난 16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8년 가까이 부양책을 써 왔지만 이제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며 "부작용은 거의 불을 보듯이 뻔한데, 효과는 불투명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메르스 사태로 경기침체가 우려되기 때문에 대규모 추경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올해 성장률을) 3%대 초반으로 유지하려면 약 20조원 정도의 대폭적인 추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추경을 굳이 한다면 경기부양까지 생각해서 대폭적으로 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최 부총리는 15일 "(메르스 사태가) 오래지속돼 충격이 커지면 (추경)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반된 입장 속에서 제한적인 추경 논의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제안한 '맞춤형 추경'이다. 즉 빠듯한 재정 상황을 감안해 경기부양 목적보다는 메르스 사태와 가뭄에 대응하는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추경 편성을 하자는 입장이다.

추경 예산과 법인세 인상을 연계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의견도 재정상황을 고려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추경을 하되 세수부족을 보강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 추경보다 메르스 조기 진압

일단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이달 말 쯤 추경예산 편성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점은 이달 말로 발표 예정인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다.

메르스 사태가 추경이 필요할 정도로 경기 침체를 초래하고 있는지 판단과 함께, 추경을 한다면 어느 규모로 할지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추경예산은 정부로서도 매우 힘든 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추경은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국회에 넘겨 통과하기까지 대략 석 달 정도 걸리고, 이후 승인된 예산을 각 부처에 배분하고 현장에 내려서 집행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빨라야 올 4분기나 돼야 재정확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현재 추경 카드를 밀어부치고 있는 힘은 다름아닌 '불안감'이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우리 경제까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금리인하는 물론, 추경까지 불러내고 있다.

따라서 메르스 사태로 인한 불안감이 조기에 종식된다면,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하는 과정에서 그 필요성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추경은 정부가 메르스 불안감을 조기에 진정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뜻이다.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추경 편성 여부와 그 규모는 결국 메르스 사태가 이달 말까지 어느정도 진정되는지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메르스 조기 종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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