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與 ‘배신의 정치’ 해결 안 하면...어떤 선택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26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전례 없이 격한 언어를 써가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단연 ‘배신의 정치’가 압권이었다.

대통령의 발언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했는지 의문이다.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다.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선 “내년 총선까지도 통과시켜 주지 않고 가짜 민생법안의 껍질을 씌워 끌고 갈 것이냐, 한번 경제 법안을 살려라도 본 후에 그런 비판을 받고 싶다.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고 강조했다.

발언의 마지막에도 정치개혁을 다시 거론했다.

“오로지 선거에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당선 뒤엔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긴다”며 “구태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그 어느 때보다 격한 어조로 공격했다.

정치권을 향한 이런 비판을 가할 땐 대통령의 언성이 높아지는가 하면 떨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배신의 정치' '선거 심판'은 대통령의 작심 발언

정치권의 형태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처럼 들렸으나 친박의 한 핵심 의원은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여당 의원들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런 정치권 비판을 전해들은 여의도는 당황과 황당, 격앙, 패닉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여당 지도부를 배신자로 규정하며 국민이 심판해달라는 대통령의 발언이다.

◇ 승부수이자 선전포고

청와대의 국정 주도에 대해 협력하던가, 하지 않으면 국민을 상대로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권을 재정비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치는 등 초강수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이 ‘배신의 정치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탈당할 수도 있으며 박근혜표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당적 이탈, 탈당과 여권 재정비 구상을 이미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여당 의원은 “신당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 정치권을 흔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했다.

◇ 대통령의 다음 카드는...탈당과 신당 창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등의 머리 속에는 박 대통령의 다음 정치적 ‘수’가 무엇이냐가 맴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발언의 의미를 한번 곱씹어 보면 박 대통령의 심중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만이 신당을 창당할 힘을 가진 유일한 정치인이다.

3김씨 이후 박 대통령을 제외하곤 그 어떤 정치인도 국회의원 2~30명(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자신의 이름으로 당선시킬 수 있는 힘, 정치적 지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당장은 아니지만 국회가, 여당이 박 대통령의 국정에 계속 협조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면 대통령의 ‘정치권 빅뱅’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김형준 교수(명지대)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치판을 바꾸겠다는 구상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면서 “대통령의 구상 중엔 탈당과 신당 창당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당이 25일 오후 꼬리를 내리며 대통령의 거부권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도 박 대통령의 이런 기류를 읽었기 때문이다.

◇ 유승민 대표는 박 대통령에겐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긴급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그런 유승민 대표는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25일 의원총회의 발언자 40명 가운데 김태흠, 이장우, 김진태 의원만이 유 대표의 사퇴를 직접 요구했고, 김현숙 의원과 정용기 의원은 우회적으로 사퇴를 언급했을 뿐이다.

35명의 의원들은 유 대표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재신임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의원들의 뜻을 고려해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은 유승민 대표는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인다”면서도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96년 12월 노동법 파문 때 원내총무(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며 유 대표가 용단을 내릴 것을 은근히 요구했으나 김무성 대표는 유 대표를 감쌌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이미 유승민 대표를 찍어내기로 작심한 만큼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 ‘사면초가’의 신세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유 대표를 재신임한 이날의 5시간 새누리당의 의총이 또 다시 배신했다고 판단하고 계속 새누리당을 압박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 대표 재신임에 대해 “불쾌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승민 사퇴론을 둘러싼 내홍은 진정되지 않고 재점화할 공산이 큰데, 역설적으로 유승민 대표는 ‘스타 정치인’으로 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다.

◇ 유승민과 '순망치한' 관계인 김무성 대표에겐 최대 시련기

가장 곤혹스러운 정치인이 유승민 원대대표일 것 같지만 김무성 대표일 수 있다.

김 대표는 유승민을 사퇴시키라는 압력을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간접적 지시를 거부한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레이저빔’을 맞을 수도 있는 국면이다.

이런 기류를 파악한 김 대표가 청와대에 대해 자세를 완전히 낮추며 최대한 국정 협력을 다짐했으나 박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누그러뜨릴지는 미지수다.

김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 카드를 버리면 청와대의 노기를 일단 피할 수 있으나 김무성-유승민 투톱체제는 순망치한의 관계다.

지난해 7월 14일 당 대표가 된 이후 최대 정치적 시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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