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메르스 통제 실패 '의문의 7일'

6월 6일부터 무더기로 환자가 쏟아진 까닭은?…첫 환자 발생 이후 뭐했나?

먼저,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인들께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국가가 뚫렸는가? 삼성이 뚫렸는가? 대답은 "둘 다 뚫렸다"가 맞다. 초기에는 국가가 뚫렸고 14번 환자 확진 이후에는 삼성이 뚫렸다. 메르스 사태가 정리되면 국가는 어떻게 뚫렸고 삼성은 또 어떻게 뚫렸는지가 반드시 규명돼야 할 것이다.

왜 반드시 규명이 필요한가?

정부의 메르스 대처과정은 뒤죽박죽이었다. 초기 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자가격리망을 넓게 펼치며 적극적 대응을 했어야 했다. 복지부는 최초 발병 후 15~17일이 지나서야 병원을 공개했다. 메르스 발발 40일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통제를 못하고 있다.

뒷북 대처는 이미 초가삼간을 상당히 태워버렸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기 어려울 만큼 대응은 느렸고 판단은 어두웠다. 메르스를 얕잡아 보다가 국민 희생은 커졌다.

또 다른 신종 전염병의 창궐을 막으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다음 두 가지가 진단의 핵심 주제다. 첫째는 정부의 평택 성모병원에 대한 뒷북대처이고, 둘째는 지금부터 살펴볼 삼성서울병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7일'이다.

'의문의 7일'이라 함은 5월 30일부터 6월 5일까지 1주일을 말한다. 아직까지도 삼성병원에서는 이 기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 보건복지부는 무엇을 했는지 설명이 없다.

왜 '의문의 7일'이 중요한지 살펴보자.

삼성서울병원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메르스 감염 사망자 12명, 확진자 87명은 '의문의 7일'에서 잉태

삼성서울병원에서 25일까지 발생한 메르스 확진자는 87명이다. 그리고 사망자가 11명이나 된다. 확진자와 희생자가 이렇게 발생한 이유는 '의문의 7일'에서 출발한다.

문제의 '슈퍼 전파자' 14번째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을 경유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것은 5월 27일이다. 14번 환자는 27일부터 29일까지 응급실에서 입원을 위해 머물렀다. 29일에는 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됐다. 확진은 다음 날인 5월 30일 이뤄졌다.

14번째 환자가 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되자 삼성서울병원은 5월 29일 응급실 전체에 대한 소독을 실시한다. 내부적으로 메르스 전파에 대한 '비상벨'이 울렸던 것이다.

응급실 소독이 이뤄진 뒤 이틀 뒤인 31일. 이번에는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째 환자가 시설격리조치 됐다. 35번 환자는 6월 1일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정부는 6월 4일 확진 사실을 일반에 공개했다.

6월 4일까지 삼성병원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이게 전부다. 그러나 '의문의 7일' 마지막 날인 6월 5일을 지나면서 상황은 매우 다급해진다.

◇ '의문의 7일' 직후 사흘간 '메르스 확진자 32명' 무더기 발생

'의문의 7일'이 지나자마자 6월 6일부터 확진환자가 갑자기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자는 6월 6일 5명, 7일 10명, 8일에는 17명이 각각 발생했다. '의문의 7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사흘간 무려 32명의 환자가 대량 발생한 것이다.

6월 5일까지만 해도 확진환자가 2명에 불과했지만 6일부터 사흘간 말 그대로 환자가 쏟아져 나온 이유는 뭘까?

삼성서울병원과 보건당국이 6월 5일까지 '의문의 7일' 동안 발생했던 환자들을 비공개하거나 숨기고 있다가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무더기 발표를 했다는 의혹이 생기는 대목이다.


'의문의 7일'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돌연 심야 기자회견에 나섰다.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사태가 매우 위중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박 시장은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와 함께 심포지엄에 참석한 동료의사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넘겨달라고 정부와 삼성서울병원에 요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그래도 삼성서울병원이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자 박 시장은 6월 6일 삼성서울병원을 재차 압박한다. D병원(삼성서울병원)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고 보건복지부와 삼성서울병원을 몰아붙였다.

서울시의 '정보공개 요구'는 정부와 삼성서울병원이 더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거센 반향을 불러왔다.

복지부는 6월 7일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20여 개의 메르스 병원 이름을 공개했다. 더이상 '비공개'를 고집하기 어려워진 삼성서울병원의 송재훈 원장이 첫 긴급기자회견을 가졌다.

박 시장이 아니었다면 '의문의 7일'은 훨씬 더 장기화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의문의 7일'이 끝나고 곧바로 사흘에 걸쳐 무려 32명의 환자가 공개됐을까?

'의문의 7일'동안 환자 수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채 축소 은폐하고 있다가 사태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삼성서울병원이 어쩔 수 없이 환자를 무더기로 쏟아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의문의 7일' 메르스 환자·의심자 다수 발생했을 가능성

송재훈 원장은 6월 7일 첫 기자회견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된 환자와 의료진이 893명"이라고 밝혔다. 또 "이들을 위해 자체 격리병동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건 전문가는 "'의문의 7일간' 삼성서울병원에서는 메르스 환자나 의심환자가 이미 상당수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관측이다.

이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측이 환자들을 모아놓고 자체치료를 한 다음 퇴원시키려 했지만, 메르스가 통제되지 않고 더 확산되는 바람에 자체치료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자체적으로 메르스를 통제함으로써 '1등병원'의 위상을 살리려 했지만, 박 시장의 공개압력이 높아지면서 더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렸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의심환자가 가운데 확진 판정까지 시간이 늘어졌을 수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의문의 7일'은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실패 풀어줄 열쇠

삼성서울병원의 '의문의 7일'을 중시하는 이유는 메르스 전파를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커졌는데도 삼성서울병원과 보건복지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면 병원이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한 '의료기록'이 있을 것이다. 이 의료기록을 보면 당시 삼성서울병원에 메르스 환자수와 의심자가 몇 명이나 됐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또 어떤 치료와 조치를 했는지도 알 수 있다.

의료기록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또 삼성병원이 자체 격리병동을 운영했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도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누가 격리병동을 운영하도록 결정했고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가 파악돼야 한다.

특히 보건복지부에 '격리병동 운영사실'을 통보했는지, 통보를 했다면 복지부 반응은 무엇이었고 또 며칠부터 격리병동을 허락했는지 등에 대한 주고 받은 모든 공문 자료도 공개돼야만 한다.

이와 관련, 삼성서울병원측은 이미 "복지부와 협의해서 자체격리 조치를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복지부가 자체격리 조치를 어떤 근거로 허용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의문의 7일'을 풀지 않고는 '방역권'을 민간병원에 떠넘겨주고도 메르스를 통제하지 못한 정부 실패, 그 원인을 추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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