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김의성 "관심 잃지 말자…어려워도 손 잡자"

[노컷 인터뷰] 사회 부조리 꼬집어 온 소셜테이너, 국가권력 파수꾼 검사를 연기하다

영화 '소수의견' 출연 배우 김의성이 26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배우 김의성(50)은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 제작 ㈜하리마오픽쳐스)에서 검사 홍재덕으로 분해 섬뜩한 연기를 선보인다.

권력의 충실한 파수꾼인 홍재덕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죽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법정공방을 통해 동물적인 욕망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평소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 건강한 발언과 행동을 보여 온 배우 김의성. 실제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영화 속 홍재덕을 연기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의성은 "너무 쉬웠다"고 말했다.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제 안에도 홍재덕과 같은 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을 이해하고 끄집어내려 했죠."

▶ 영화 소수의견을 어떻게 이해했나.

= 처음에는 용산참사를 다룬 소설을 영화화하는 거라 들었다. 정말 이상한 영화라면 피하겠지만, 제게 '어떤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가'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 아니다. 소수의견은 한 편의 이야기로서 무척 좋았다. 그 안에 담긴 사회·인간에 대한 시선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 처음부터 검사 역을 제안 받았는지.

= 아니다. 역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극중 법조인들이 많이 나오니 그들 중 한 명을 맡아 달라는 정도였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검사 홍재덕 역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담당 프로듀서에게 "홍재덕 시켜 달라"고 마구 졸랐다.

▶ 영화 말미 검사 홍재덕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여운은 강렬하다.

= 시나리오를 보면서 가장 기대가 컸던 장면이다. 현장에서 대사가 바뀐 면도 있다. 홍재덕이 스스로 "봉사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대목을 개인적으로 꼭 넣고 싶었다. 국가권력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옳지 않은 길을 가면서도 자기를 변호하는 전형적인 말이지 않나. 스스로를 속이고 합리화하려는 그 대사의 함의와 울림이 컸다. 홍재덕의 그 말을 들은 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의 '무슨 헛소리냐'는 식의 제스처도 좋았다.

▶ 권력을 좇는다는 점에서 홍재덕은 영화 '관상'(2013)에서 연기한 한명회 캐릭터와도 닮은 지점이 있어 보이는데, 연기하는 데는 어땠나.

= 접근법이 달랐다. 관상의 한명회는 영화 안에서 어떻게 배치되느냐가 중요한 인물이었다. 관객들 앞에 나타났을 때 임팩트가 큰 역할인 것이다. 연기의 기쁨보다는 감독의 영역 안에 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소수의견의 홍재덕은 연기하는 데 자유롭고 뭔가를 창조해낼 여지가 컸다.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배우로서 연기하는 데는 홍재덕이 상대적으로 재밌었다.

▶ 그 동안 맡아 온 캐릭터들이 평범하지는 않다. 역할 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 조연 배우 입장에서 그 캐릭터가 얼마나 선명한지를 먼저 본다. 그 선명함이 품고 있는 함의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보여지는 캐릭터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그 아래 거대한 덩어리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배우의 연기라고 본다. 단순히 기능에 머물지 않고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캐릭터인지도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지금은 몹시 선명하고 강한 캐릭터에 끌리고 있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검사 홍재덕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사진=하리마오픽쳐스 제공)
▶ 지난 겨울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관련해 1인 시위를 하는 등 한국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 '소셜테이너'로서 연기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은 없나.

= 한국 영화계는 그런 면에서 건강하다. 개인의 가치관이 어떤지,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모두를 쿨하게 받아들여 주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일하게 열린 동네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고맙다. 한편으로는 '내 행동이나 말이 이 공간에 누를 끼치지는 않나'라는 생각에 보다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하려 애쓰고 있다.

▶ 주변의 요구, 바람 등과 맞물려 자기검열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겠다.

= 없지 않다. 자기검열 없이 살 수는 없다. 제 자신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말과 행동도 검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검열이 반드시 부정적이만은 않다고 본다. 아무래도 편하게 얘기하던 시절보다는 부정적인 자기검열도 존재한다.

배우라는 직업과 한 사람으로서 지닌 생각의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그 원칙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 주느냐도 중요하게 다가오는 때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더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보다 성숙하게 표현하는 법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 그 고민의 지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 긍정적인 면을 늘리려 하기보다 부정적인 면을 줄이려 노력한다. 우리 세대는 이미 기성세대의 한복판에서도 나이든 방향으로 가고 있다. 스스로 끊임없이 되돌아보면서 자극을 주지 않으면 바로 오염될 수 있는 위치인 셈이다. 이상한 사람 되는 건 한순간이다. 그런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지 않나.

그래서 저는 부자연스럽게 살려 애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젊고 열린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작은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버티는 것이다. 미약하지만 제가 하는 노력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충 사는 게 대부분이다. (웃음)

▶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에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을 잊을 수 없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배우로서, 한 사람으로서 달라진 것이 있을 텐데.

= 많이 달라졌다. 나이도 20년이나 차이가 나고, 경험도 달랐고, 배우를 그만 뒀던 시기도 있으니…. 그때는 참 서툴렀다. 연기가 뭔지도 몰랐고,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아도 작품을 전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이 배우로서나, 사람으로서나 조금 더 나아지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한다.

▶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나.

= 대학 때 연극반을 했다. 그때는 다 운동권이었다. 술먹고 노는 것도 재밌었고, 연극을 통해 사회·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시작했다. 학교 다니면서 1987년, 88년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자연스레 학교 밖에서도 정치적인 연극을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 동구권 국가가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방향성도 무너졌다는 좌절에 상처와 혼란이 컸다. '내가 해 온 것은 뭘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인 연기가 삶의 목표로 잡혔고, 직업 연기자가 됐다.

▶ 배우를 그만 둔 시절에는 베트남에서 드라마 제작사를 차려 성공했다고 들었다.

= 성공했다가 실패했다. (웃음)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좋아했고,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겹쳐져 사업을 시작했다. 사기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는 등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그때가 막 한류 얘기가 나올 때여서 베트남에서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나섰는데, 사업하기에는 다소 빨랐던 것 같다.

사실 다시 배우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베트남에서 재정비가 필요했고, 투자도 받아야 했던 시절이다. 아버지께서 암 투병을 하셔서 귀국해 1년가량 곁에 머물렀다. 당시 홍상수 감독님이 "다시 연기를 해 보라"고 권했지만 자각은 없었는데, 감독님의 북촌방향(2011)에 잠깐 출연하면서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애초에 1990년대 후반 연기를 그만 둘 때 '안하겠다'고 결심을 했기에, 돌아올 때는 더 큰 결심이 필요했다. 그때는 스스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했고, 배우로서의 삶이 희망을 주지 못하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환위기 때 사업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말이다. (웃음)

배우 김의성(사진=황진환 기자)
▶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 값어치를 하는 배우였으면 한다. 제게 돈을 주는 것이 합당한, 그 돈이 아깝지 않게 일하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 현장에서는 격의 없는 선배가 되고 싶다. 1대 1로 나이, 성별, 위치를 떼 놓고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 시민으로서는.

= 앞서도 말했지만 제 안의 부정적인 면을 줄여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회가 좀 더 나아지는 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와 '나부터 잘하자'는 생각이 공존한다. 어릴 때부터의 화두다. 이를 위한 두 가지 목표가 있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일이라도 관심을 잃지 말자'가 첫째요, '어렵더라도 손을 잡자'는 것이 둘째다.

▶ 영화 소수의견의 촬영을 마치고 이번에 개봉하기까지 2년이라는 기다림이 있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최근 메르스 사태까지 시스템의 부조리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개인적으로 소수의견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법도 한데.

= 소수의견에서 이야기되는 것들이 훨씬 피부에 와 닿고 가슴을 찌른다. 세월호 참사는 저에게도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해 '우리를 지켜 주는가' '관심이 있기는 한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 까닭이다. 최근 메르스 사태만 봐도 '국민의 안전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관심이 없을까'라는 배신감이 앞선다.

영화 소수의견이 내용만 보면 절망적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내적으로 변화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이 곧 희망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말 그대로 '희망으로서의 희망'에 머물더라도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소수의견이 좋은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소수의견을 볼 관객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 재밌는 영화다. 소수의견은 극장을 나서면서 극장 안에서의 경험을 순식간에 휘발시키는 영화가 아니다. 이 점에서 분명히 '투자한 돈이 아깝지 않다'고 여기실 것이다. 가능한 많은 분들이 재밌게 보시고, 보신 것만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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