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독일, 알고보니 '유럽판 한일관계'

유럽연합깃발과 함께 걸려있는 그리스 국기(사진=스마트 이미지)
6일 실시된 그리스 국민투표는 예상과 달리 상당수가 반대표를 던지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스 최대 채권국인 독일로서는 당혹스런 결과다. 예상과 다른 투표결과를 놓고 서구언론에서는 그리스-독일간의 역사적 구원(久怨)이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마치 한일간의 관계처럼 말이다.

'유럽판 한일관계'인 그리스-독일의 악연은 역시 세계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축국의 일원이던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침공했으나 실패하자 1940년 12월 독일의 히틀러가 불가리아 국경을 통해 그리스로 쳐들어 내려온다. 이듬해 봄 그리스군은 숫적 열세에 밀려 항복하고 만다. 독일 점령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941~1944년 독일점령 시대에 그리스는 30만명이 기근으로 숨졌고 13만명이 독일군에 의해 처형됐다. 독일군 1명이 그리스인 150명씩을 처형한 셈이었다. 이 시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인플레이션의 5배가 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그리스를 덮치면서 120만명이 노숙자가 됐다. 그리스의 금 보유고는 '대출'의 형태로 나치정권에게 넘어가 독일의 북아프리카 침공의 자금원이 됐다.

독일군에 의한 그리스 양민학살 사건도 횡행했다. 특히 1944년에는 그리스 '디스토모'지역에 나치 친위대원들이 들이닥쳐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218명을 살해했다. 그리스 게릴라들 때문에 독일군 7명이 죽자 보복행위로 양민을 학살한 것이다. 독일군들은 학살한 그리스 민간인의 시신을 나무에 매달아 두기도 했다.

2차 대전 이후 1953년 런던회의에서 연합국이 주축이 된 '채권국'들은 서독의 채무를 탕감해주기로 합의한다. 공산권의 유럽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당시 이 회의에는 그리스도 참가해 '빚 탕감'에 서명했다. 이 합의로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전후 부흥에 성공한다.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이 허술한 도쿄 재판의 면죄부를 거쳐 한국전쟁을 계기로 경제부흥에 성공한 것과 닮은꼴이다.

1960년 그리스와 독일 정부는 당시 1억 1,500만 독일 마르크를 전후배상금으로 합의했다. 독일은 이 배상금으로 모든 전쟁배상이 끝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는 독일의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그리스 피해자들도 독일을 상대로 개별적 소송에 들어갔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전후배상문제는 만료된 것으로 생각됐지만 1997년 디스토모 학살사건 피해자들은 그리스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그리스 대법원도 이에 맞춰 그리스내 독일 자산의 압류를 명령했다. 하지만 그리스 법무부는 아직까지 압류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강제로 대출해간 금과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지금 그리스가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구(IMF)로부터 받은 구제금융 2,400억 유로와 맞먹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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