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오늘 뭐했지?]서독, 월드컵 결승 최초 필드골 없이 정상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MVP 로타어 마테우스(왼쪽)와 공격수 루디 푈러.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축구 팬들에게 4년 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월드컵은 축제입니다. 특히나 마지막 두 팀이 맞붙는 결승전은 더더욱 그렇겠죠. 아마도 가장 강력한 두 팀이 화끈한 축구를 펼쳐주길 기대할 겁니다. 실제로 1980년대 월드컵까지는 결승전에서 평균 4.94골이 나왔습니다. 결승전 최소 득점도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이탈리아-체코), 1974년 서독 월드컵(서독-네덜란드) 3골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는 결승전 득점이 확 줄었습니다.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7월9일은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날입니다.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맞붙었는데요. 1930년 처음 시작된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필드골이 없었던 결승전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앞선 월드컵 결승전 최소 득점 대회의 개최국 간의 맞대결이었네요.

바로 전 대회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이은 두 대회 연속 결승전 맞대결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아르헨티나가 3-2로 서독을 제압했습니다. 디에고 마라도나를 최고 스타로 만든 대회였습니다.

특히 앞선 대회 결승전에서는 남미와 유럽이 만나 5번 모두 남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공격의 핵이었던 클라우디오 카니자가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마라도나는 토마스 베르톨트의 악착 같은 수비에 힘 한 번 쓰지 못했습니다. 반면 독일은 로타어 마테우스의 지휘 아래 루디 푈러, 위르겐 클린스만 투톱이 계속해서 아르헨티나 골문을 두드렸습니다. 슈팅 수 16-1의 압도적인 경기였죠.

수비로 나선 아르헨티나의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는데요. 그나마 후반 19분 아르헨티나 수비수 페드로 몬손이 퇴장 당하면서 승부의 추가 서독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온 첫 퇴장이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정상을 차지한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 감독.
그리고 후반 39분 푈러가 아르헨티나 페널티 지역에서 로베르토 센시니의 파울을 유도했습니다.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침착하게 성공시킵니다. 결승전의 유일한 골이었고,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은 필드골 없는 첫 결승전이 됐습니다. 덕분에 서독 골키퍼 보도 일그너는 최초의 결승전 무실점 골키퍼가 됐습니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브라질과 이탈리아가 0-0을 기록하면 두 대회 연속 필드골이 없는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최근 결승전은 모두 연장에서 1골씩 나왔죠.

아르헨티나는 종료 2분을 남기고 구스타보 데소티마저 퇴장 당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지난 대회 우승, 준우승 팀이 바뀌었습니다.

이로써 서독은 1954년 스웨덴 월드컵과 1974년 서독 월드컵에 이어 세 번째 월드컵 정상에 올랐는데요. 브라질, 이탈리아에 이은 세 번째 기록입니다. 이후 브라질이 두 차례, 이탈리아가 한 차례, 통일 후 독일이 한 차례씩 더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MVP는 마테우스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프란츠 베켄바워 감독은 주장과 사령탑으로 월드컵 정상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 됐는데요. 베켄바워는 1974년 서독 월드컵 주장이었습니다.

한편 득점왕은 6골을 기록한 살바토레 스킬라치(이탈리아)에게 돌아갔습니다. 당시 6골은 득점왕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마리오 켐페스가 6골로 득점왕에 오른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호나우두가 8골을 넣을 때까지 줄곧 6골 득점왕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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