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은 어제(9일) 삼성과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원정에 선발 등판했습니다. 문제의 장면은 4회말 2사 2루에서 나온 박석민의 높이 뜬 내야 타구 때 발생했습니다. 김광현과 1루수 앤드류 브라운, 3루수 김연훈이 서로 콜을 미루다가 뜬공 처리를 하지 못했고, 안타가 됐습니다.
그 사이 2루 주자 최형우가 3루를 거쳐 홈까지 쇄도했고, 김광현이 엉겁결에 태그하면서 아웃이 선언돼 이닝이 종료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중계 화면에는 김광현의 글러브에 공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박석민의 타구는 함께 포구하려던 브라운의 글러브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김광현과 브라운, 그 둘을 빼면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심판도, 삼성 선수단도 모두 김광현이 타구를 잡은 줄 알았습니다. 판정에 대한 항의나 비디오 판독 요청도 없었습니다. 김광현과 브라운의 함구 속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기는 진행됐습니다. 문제의 장면이 중계에 슬로 화면으로 나온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잡아내기 불가능했지만 최첨단의 기술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의도하지 않은 연극에는 브라운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김광현과 나란히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서 슬그머니 공을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김광현의 발 쪽으로 공을 떨궜는데 누가 잡은지 모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그걸 바라보는 김광현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보입니다. 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무언가를 들킬까 조마조마해 하는 표정입니다.
김광현, 브라운 주연의 이 감쪽같은 연극은 오래가지 않았죠. 그러나 판정은 내려진 뒤였습니다. 4회말은 끝났고, 번복의 때는 지났습니다.
도상훈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은 "마침 SK 선수 3명이 겹쳐 정확한 판정이 어려웠다"고 오심을 시인하면서도 "만약 김광현이 바로 얘기를 했다면 판정이 바뀌었을 것이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사후 번복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3월 베르더 브레멘의 아론 훈트는 뉘른베르크와 경기에서 후반 29분 페널티킥을 얻어냈습니다. 페널티 지역으로 쇄도하다 상대 수비수 하비에르 피놀라의 저지에 넘어진 겁니다. 하지만 둘의 접촉은 없었고, 피놀라는 억울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때 훈트는 주심에게 반칙이 아니라고 설명했고, 페널티킥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모른 척 넘어가 득점할 수도 있었지만 훈트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뜻밖의 결과에 뉘른베르크 선수들은 훈트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당장의 이익보다 스포츠맨 정신을 선택한 겁니다.
물론 김광현과 훈트를 같은 기준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브레멘은 후반 15분을 남기고 2-0으로 앞선 상황이었습니다. 굳이 골을 더 추가하지 않아도 이길 확률이 높았습니다. 0-0,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김광현의 상황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여기에 축구는 사후 동영상 분석을 통한 징계도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경기 규칙에 따라 경기가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선수들의 페어플레이를 유도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겁니다. K리그 클래식도 심판이 잡아내지 못한 퇴장성 반칙이나 잘못 적용된 반칙을 바로 잡아 제재를 부과하거나 감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광현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겁니다. 당장 그 순간은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어차피 규명될 부분입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비록 똑같은 장면은 아니지만 올해 KBO는 이미 이런 상황에 대한 교훈을 톡톡히 얻은 바 있습니다.
두산 민병헌의 징계가 바로 생생한 예입니다. 민병헌은 지난 5월 27일 NC와 창원 원정에서 벌어진 그라운드 대치 상황 때 공을 상대 투수 에릭 해커 쪽으로 던지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심판진은 엉뚱하게도 민병헌 대신 장민석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습니다.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뛰어나오는 어수선한 가운데 심판은 물론 대부분이 누가 공을 던졌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애초 심판은 사태가 정리된 뒤 두산 더그아웃으로 가서 범인을 색출했는데 장민석이 손을 번쩍 들면서 총대를 멨습니다. 당시 민병헌도 손을 들었지만 장민석이 워낙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묻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화면 분석 결과 장민석이 진범이 아니라는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공의 각도와 중계 화면에 나타난 시점상 다른 누군가가 공을 던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국 민병헌이 하루 만에 실토를 했고, KBO는 비신사적 행동으로 구장 질서를 문란케 했다고 판단, 리그 규정 벌칙내규 7항에 의거해 3경기 출전 정지와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40시간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같은 일이 벌어진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광현이 다시 시치미를 뗀 일이 일어난 겁니다. 물론 김광현이 민병헌처럼 위해를 직접적으로 가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김광현이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태그를 한 것인데 판정이 의도치 않게 내려진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인도 경기 후 해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행동은 국내 최고 좌완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빼어난 경기력과 함께 선행을 펼쳐온 김광현이기에 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지난해 김광현은 데뷔 후 심장병 어린이의 수술비를 지원하고 세월호 피해자를 위해 기부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펼쳐 '사랑의 골든글러브상'을 받았습니다.
김광현은 실력은 물론 심성도 좋은 선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만약 정말 삼성전의 판정에 기뻐했다면 표정이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무언가 개운치 않은 듯 주위를 둘러보는 김광현의 얼굴은 그의 양심을 말해줍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상황이 끝나버려 말해야 시기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판정을 정확히 내리지 못한 심판진이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하지만 김광현도 오심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를 통해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여준 성과와 경기 외적인 선행이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김광현은 지난 2007년 SK 입단 전 인터뷰 때부터 난세의 영웅이 됐던 그해 한국시리즈,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입단 초기부터 지켜봐왔습니다. 지난해 전반기 마지막 경기 때는 이만수 감독을 대신해 팀을 대표해 결산 인터뷰를 했습니다.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잘 자란 청년, 제가 알고 있는 김광현이라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