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 5163 부대, 당신은 누구십니까?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낯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정부기관(국정원으로 추정됨)이 이탈리아 해킹 전문 업체로부터 인터넷과 휴대폰 감청이 가능한 해킹 프로그램을 사온 일이 '최근' 드러난 겁니다. 비용으로 2012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8억원 이상이 지불됐습니다.

첩보 영화에서나 나올법 한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진 겁니다. 국정원측은 비공식적으로 대북 동향 파악과 해외 정보 수집용이었다고 국회에 보고하면서 발뺌하려고 하는 듯 합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정보기관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어쩌면 정보기관 고유의 업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프로그램을 누구를 대상으로 사용했느냐에 따라 얘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그간 국정원이 해왔던 민간인 사찰, 대선 개입 의혹 등등이 있잖습니까.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카카오톡을 해킹하려 한 이유가 대북, 해외용이라면 누가 믿겠습니까)

해킹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이 해킹을 당한 것도 재미있습니다만...어찌됐든 해당 이탈리아 업체의 고객 명단이 해킹으로 유출되면서 우리정부 '민낯'도 여과없이 노출될 처지에 빠졌습니다.

현재 국정원측은 한국 정부는 감청프로그램을 살 수 없다는 입장을 슬쩍 흘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5163부대가 대리인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을 구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 해킹 프로그램을 산 주체는 누구인가

이에 대해 최초 문제 제기를 한 프로그래머 이준행 씨는 지난 9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이탈리아 업체에서 유출된 거래내역서를 확인한 결과 '서울 서초구 사서함 200'이라는 주소를 쓰고 있는 '5613부대' 이름으로 거래가 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5163부대는 대체 누구일까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장본인인 국정원 여직원의 모습/자료사진
단초는 2013년 11월 시사IN의 기사입니다. 당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 정국이 뜨거웠었죠.

'대선 개입 의혹'의 당사자였던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개인 변호사 비용이 '7452부대'에서 지급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정원의 대외용 위장 명칭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으로 국정원은 7452부대도 운영했지만 5163이라는 위장 명칭도 사용한 정황이 드러났는데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곳이 '39호실'이라고 불렸는데, 남북이 참 숫자를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5163부대 역시 국정원이 모체라는 '설(說)'이 신빙성이 높아집니다.

5163이나 7452는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이 깊습니다. 5163은 5.16 쿠테타 때 당시 박정희 소장이 새벽 3시에 한강철교를 넘었다는 데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452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일컬어지는 7.4남북공동성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 위해 극비리에 판문점을 넘은 날이 5월 2일 입니다.

◇ 너무나도 묘한 숫자, '5163'


지금 온라인상에서는 5163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다음날인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 당사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먹고사는 것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이 즐겁게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황진환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 결과를 보면 박근혜 후보는 51.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문재인 후보를 눌렀습니다.

누군가는 당시 선관위 서버가 해킹을 당했고 5.16 쿠테타를 의미하는 득표율이 사전에 조작됐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었죠.

◇ 해킹 프로그램, 대체 무슨 용도 였을까

5163부대가 최초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시기는 2012년으로 돼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대선이 있던 해였죠.

아직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만약 국정원이 해당 프로그램을 그 때 구입한 것이 맞다면 '또 다른 논란'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해당 업체의 설명을 빌어 이 프로그램의 성능을 분석해 보면 이 업체의 스파이웨어에 감염되면 사용자의 PC에 저장된 문서파일이나 평소 사용하는 패스워드가 모두 감시기관에 전송이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카메라에 있는 사진 혹은 자신이 이동하고 있는 위치정보도 전송이 되고 통화내용도 녹취돼서 감시기관에 보내집니다.

그 외에 SNS에서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도 확인이 될 뿐 아니라 스마트폰에 있는 마이크를 통해 사용자의 주변 환경이나 사무실 내에서의 대화내용까지 모두 감시할 수 있습니다.

워터케이트 사건을 폭로한 칼 번스타인(왼쪽)과 밥 우드워드 기자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재선을 준비중이던 닉슨이 상대 당인 민주당사에 도청기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결국 재선에 성공했지만 스스로 대통령직을 내놓았습니다.

'제2의 워터게이트'라고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닙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이상, 명명백백하게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기자 초년병이었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연일 1면으로 파헤칠 때 다른 언론들은 팔짱만 끼고 있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단순 절도 사건으로 처리한 언론도 있었습니다.

◇ 끊임없이 이어지는 또 다른 '의혹'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3월 '5163부대 관계자'가 이탈리아 업체와 접촉해 '카카오톡' 해킹 기술에 대한 진전 사항을 물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방선거가 있었던 그해 6월에는 '안드로이드 휴대폰 공격 기능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사실도 나왔습니다.(대한민국은 안드로이드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스파이웨어를 심기위해 누군가가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해 이메일을 뿌렸다는 의혹도 일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국정원은 답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음지에서 양지를 위해 일한다'는 안기부로, 중앙정보부로 회귀할 것인지 아니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국정원으로 남을 지를 선택해야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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