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만나고 충동적 결정? 윗선 못밝힌 하베스트 수사

강영원 전 사장, 왜 최 전 장관만나고 급하게 결정했나 규명 못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하베스트의 부실 자회사 날(NARL)를 인수해 수천억원대 손실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왜 무리한 인수를 추진했을까?

검찰 수사 결과 강 전 사장은 캐나다에서 인수 협상이 결렬돼 귀국한 직후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장관(현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을 면담하고 마음을 바꿔 불과 나흘만에 인수를 밀어붙인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최 부총리가 "신중히 검토해 처리하라"는 지시만 했다고 밝혔지만 시점상 최 부총리와의 면담이 인수 추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 부총리 등 윗선의 개입을 밝히지 못하고 강 전 사장을 기소하는 수순에서 하베스트 부실 인수 의혹이 마무리 됐지만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는 하베스트 정유 부문 자회사 날(NARL)을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5,500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강 전 사장을 구속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사장은 하베스트 중 석유자원개발, 탐사 부분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상류부문만 인수하려고 추진했지만, 하베스트사가 갑자기 원유 정제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하류부문 자회사 '날'까지 일괄적으로 인수할 것을 요구했다. 날은 설비 노후화와 고비용으로 애초 인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은 부문이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009년 10월 14일 캐나다에서 1차 협상이 결렬되고, 이후 며칠간 수정제안을 했음에도 하베스트가 날을 포함한 일괄 인수를 요구하자 강 전 사장은 더이상 인수협상이 어렵다고 판단해 철수하기로 했다.

강 전 사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부사장에게 일방적 합의파기 행위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는 메일을 보낼 것을 지시했다. 이에 하베스트는 10월 21일까지 일괄 인수를 결정하면 독점협상권을 주겠다고 마지막 최종 제안을 했다.

강 전 사장은 귀국 직후인 18일 오후 5시쯤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을 만났다. 그리고 곧바로 마음을 바꿔 부실 자회사 날을 포함해 일괄 인수를 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검찰은 강 전 사장이 장관으로부터 '신중히 검토해 처리하라'는 말만 들었고, 구체적인 인수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봤다. 강 전 사장만 배임 혐의로 처벌을 받고, 최 부총리는 이번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점상 최 부총리와의 면담 내용이 어떤 식으로든 강 전 사장의 인수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그해 사장경영계획서 상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인수를 독자적으로 추진했을 것이라는 검찰 측 설명이 다소 억지스러운 이유이다.

결국 강 전 사장은 불과 3, 4일 동안 메릴린치에 의뢰해 날의 자산가치 및 경제성 평가를 졸속으로 만들었고, 하베스트 측의 요구대로 인수 금액을 맞춰 준 결과가 됐다.

'고물차 인수', '바가지 인수'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승인이 떨어지기도 전에 지식경제부에서는 '하베스트 인수 성공'이라는 보도자료가 발표됐다.

검찰은 강 전 사장을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 귀국 후 1~2 시간만에 내부 검토나 의견수렴 없이 즉흥적으로 인수를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권 차원의 개입이나 책임 여부는 밝혀내지 못한 것이 이번 수사의 명백한 오점으로 남는다.

앞서 지난해 10월 석유공사 국정감사에서 강 전 사장은 "당시 장관을 만나 하베스트에서 날까지 포함해 인수하라고 한다는 사실을 보고했나. (장관이) 허락을 했느냐"라는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질문에 "(장관이) 부인하지 않은 것은 정확하다"고 답변한 바 있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역점을 둔 수조원대 자원개발 사업을 일개 공기업 사장이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에 대해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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