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교과서 만지작, 거꾸로 가려는가?

(자료사진)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과목을 국정교과서로 바꾸는 방안을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초 국정교과서화를 추진했다가 비판여론에 직면하자 죽은 자식이 된 줄 알았는데,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지난 22일 열린 고위당정청 회동에서는 '한국사 역사교과서' 문제가 의제로 다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미리 배포된 자료집에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대신, 관련 자료가 참석자들에게 현장에서 배포된 뒤 수거됐다고 한다. 이처럼 회의 내용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고, 당정청 회의 결과 브리핑에도 국정교과서 문제는 빠졌다.

한국사의 국정교과서화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교감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학사 교과서의 우편향 논란이 한창이던 시절 김 대표는 "(좌편향 교과서가) 자랑스러운 역사를 못난 역사로 비하한다. 역사를 바로잡는 방안을 모색해 좌파와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한국사 교과서를 이념대결의 도구로 삼으려는 듯한 발언을 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도 올해 초 토론회에서 "교실에서 역사를 한 가지로 균형있게, 권위있게 가르치는 것은 국가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가세했다.


현행 법체계상 국정교과서 추진은 별도의 법령 조항이 없어 시행규칙 등 행정명령 만으로 실행이 가능해 장관의 결심 만으로도 강행이 가능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정교과서 문제는 정치적 외풍에 따라 등장과 소멸을 반복했다. 해방 이후 검정체제를 유지하던 한국사 교과서는 유신 시절인 1974년 '주체적 민족사관 확립'을 이유로 국정체제로 전환됐다. 그러다가 교과서의 획일화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참여정부 때인 2007년부터 초중고 국사와 도덕, 국어 교과서를 검인정 체제로 전환했다.

이미 검인정 체제로 바뀐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세계 유수의 선진국 중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 베트남 등이 있을 뿐이다.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미화한 게 과거 국정교과서 아니었던가? 역사라는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학문인 만큼 다양성을 배격한 채 국가가 만든 교과서만 사용하게 하겠다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획일적인 사고를 주입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정권은 5년 마다 바뀌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할 교육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휘둘린다는 것은 교육현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또다시 국론의 분열만 가져올 뿐이다.

교육부가 2018년부터 사용할 교과서의 지침, 즉 '개정 교육과정'을 오는 9월쯤 고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국정교과서 시도는 중단돼야 하고, 이참에 시행규칙 만으로 검인정 체계를 국정교과서 체계로 간단히 바꿀 수 있는 현행 제도도 손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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