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출국한 김무성 대표는 다음 달 1일까지 미국에 머물며 미국 정가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고 보수단체에서 연설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여권 내 대권주자들 가운데 지지율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미국행은 사실상 미국정가에 김무성 알리기 행보이다.
◇ 박정희에서 박근혜까지, 뿌리 깊은 대권 주자의 '미국방문기'
1961년에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1년 11월에 미국부터 방문했다.
군사쿠데타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부정적 시각을 씻고 정통성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의장은 미국에서 당시 젊은 지도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던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다.
케네디 효과는 엄청났다. 박정희 의장은 수차례 자신이 발언한 민정 이양 약속을 깨고 1963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 윤보선 후보에 불과 15만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 1979년까지 장기집권한다.
이후, 여권의 대권 주자라면 미국을 갔다 오는 것이 공식이자 통과의례처럼 돼있다.
노태우 민정당 총재는 대통령 선거 석 달 전인 1987년 9월에 미국에 가서 자신이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임을 알렸다.
다음 대통령이 된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대선 1년 전인 1991년 11월에 미국을 찾았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도 2002년 1월에 미국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 등 유력인사들을 만나고 보수단체 여러 곳에서 연설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3년 전인 2009년 4월에 미국을 방문해 유력 정치인들을 만나 대선 때 캐치프레이즈였던 '국민행복시대'와 '경제민주화'를 주창했다.
역대 여권 대권 주자들이 대선 직전이면 꼭 미국부터 먼저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가장 외교적으로 중요한 나라라는 점과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여권 내부에는 아직도 미국을 혈맹관계를 넘어 외교적인 면에서 형님 또는 갑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들이 많다.
'미국으로부터 먼저 인정받아야 진정한 대권 주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권 주자가 미국에 등장하면, 우리 외교당국자들은 온갖 채널과 인맥을 동원해 미국 정부 실력자들과 대권 주자와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반면에, 미국 정부로서는 차기 대권 주자와의 관계를 예약함으로써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정책을 더욱 안정적으로 펼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대권 주자의 방미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 "중국보다 미국이 우선"은 경솔한 립서비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립서비스치고는 너무 나간 발언이라는 반응이 많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했을 때 중국의 위상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김무성 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 불쾌할 수 있다. 나중에 김무성 대표에게 이번 발언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외교당국자들은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경솔했다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외국대사를 지낸 한 정치인은 "외교라는 것은 우리 편을 많이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정치지도자라면 국익과 자존심을 동시에 고려하는 외교적 발언에 훈련이 돼 있어야 하며 먼 훗날까지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