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돈이 '웬수'인 재벌家…형제의 난을 치른 기업들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운데),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권력은 측근이 원수요', '재벌은 돈이 원수'라는 말이 있다.

권력이란 잡을 때까지는 한솥밥을 먹던 동지들이 창업을 넘어 수성의 단계에 들어가면 최고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측근들은 측근들대로 서로를 의심하며 분화하기 시작해 결국엔 등을 돌리는 속성을 지닌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근자에는 유승민 사퇴 파동이 대표적인 예다. 전제 왕조 시대에는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아들이 아버지를 도륙한 예는 허다하다. 조선과 중국 역사에서 이런 사악하고 패륜적인 짓들이 많이 자행됐다.

지금은 인권이 개선돼 살육전을 전개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보지 않는 앙숙의 관계로 악화되곤 한다. 대표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든 '상도동'계가 이쪽저쪽으로 갈린 것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와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달성한 '동교동'계 역시 일부 인사들은 지금까지도 정적 관계다.

이와 비슷한 비정한 권력의 생리가 돈 권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 권력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재산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 부자지간, 부녀지간 대립은 갈등 수준을 넘어 가히 불구대천의 원수 단계로 비화한다.

재벌가들의 상속을 둘러싼 대립은 생존의 싸움이 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국내 재계 순위 5위인 롯데그룹에서 경영권 승계 문제를 놓고 형제 간 분쟁이 불거지고 있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건강이 좋지 않은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을 등에 업고 동생인 신동빈 회장 체제를 무너뜨리려다 신 회장에게 반격을 당했다. 신격호 회장이 아들에 의해 전격적으로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란은 1일 천하로 끝났다. 롯데그룹 후계구도를 둘러싼 '형제간 전쟁'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대한민국 최대 재벌가인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현 회장과 장남인 이맹희 씨(CJ 이재현 회장 아버지)와의 갈등은 시간이 꽤 흘러 그렇지, 이맹희 전 회장이 물러날 당시엔 세인들의 입방아에 크게 오르내렸다. 물론 이병철 전 회장이 생전에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그룹을 넘겼기에 형제간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최근까지도 유산을 둘러싼 소송전이 전개됐다.

재벌가의 형제 다툼하면 현대가를 빼 놓을 수 없다. 지난 2000년 현대그룹의 '형제의 난'은 여전히 우리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다.

(자료사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둘째 아들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다섯째 아들이었던 고 정몽헌 회장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정몽헌 회장에게 현대그룹을 맡게 했고, 이후 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회가 정몽구 공동회장의 면직을 발표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했다. 몽구-몽헌 두 형제의 싸움은 현대 아산을 중심으로 한 현대그룹(정몽헌 전 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정몽구 회장), 현대중공업그룹(정몽준 전 의원) 등 여러 개로 쪼개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당시에 김대중 정부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결정적이었으나 DJ는 현대가 형제의 난에 개입을 하지 않았다. 정몽헌 전 회장 측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지원을 은근히 기대한 반면 정몽구 회장 쪽에서는 중립을 지켜달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가 형제의 난에 관여했다는 한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 쪽에서 청와대의 의중을 알아봐 달라는 연락이 와 챙겨봤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실히 세웠더라"면서 "그런 사실을 알려줬더니 몽구 회장 진영이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정몽헌-정몽구 싸움의 승자는 몽구 회장이었다.

금호그룹과 효성그룹 등에서는 형제의 난에 따른 소송전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셋째 아들인 박삼구 회장과 넷째 아들인 박찬구 회장이 갈등을 빚은 이후 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졌으며 검찰 고발과 법원의 소송전이 멈추지 않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자료사진)
박삼구 회장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가 2009년 글로벌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위기에 봉착하자 석유화학부문을 맡았던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만이라도 살리겠다며 분리 경영을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이를 말리던 박삼구 회장과 동생인 찬구 회장이 소송전으로 폭발한 것이다. 금호가 형제의 난은 '사느냐', '죽느냐'의 전쟁 수준으로 점입가경이다.

두 회장은 지난 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했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고 지난 5월 큰형님인 박성용 회장 10주기 추모행사도 각자 가졌다.

효성 그룹 역시 조석래 회장의 아들들끼리 분쟁이 불거져 소송 등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조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큰 형인 조현준 사장을 포함해 효성 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원 9명을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형제들은 지분 경쟁을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산그룹도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 다툼으로 그룹이 큰 피해를 입었다. 두산그룹은 2005년 박용오 전 명예회장이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을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형제의 난'을 겪기도 했다

진로그룹과 한화그룹도 형제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라는 좋지 않은 경험을 안고 있다.

굴지의 재벌뿐만 아니라 중견 기업들이나 유산을 많이 남긴 부유층 집안에서의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이 감정싸움과 소송으로 이어진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회사 경영권이나 유산 상속을 놓고 형제끼리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것은 돈의 '나쁜' 속성 때문에 기인한다.

돈과 권력 앞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친인척도 없다는 인간의 후안무치한 면이 노정되는 것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간간히 발생하지만 대한민국의 재벌가에서 유난히 심하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데다 재산을 자식들에게 상속하려는 유교 문화의 부끄러운 습성이 민낯을 드러내는 꼴이다.

소유권을 놓고 벌이는 '형제의 난'은 미국의 GM과 포드 등 굴지의 대기업들과 독일의 BMW 등 백년을 넘보는 장수기업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추한 작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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