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항상 일…가끔 결혼도 꿈꿀걸 그랬다"

[노컷 인터뷰] 휴먼 코미디 '미쓰 와이프' 개봉 앞둬…"실제 삶에 울림 줘"

영화 '미쓰 와이프' 주연배우 엄정화가 지난 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배우 엄정화는 오는 13일 개봉하는 주연작 '미쓰 와이프'에서 일과 자기 외에는 안중에도 없는 연우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감정 이입이 잘 됐다"고 말했다.

"제게도 연우 같은 면이 있거든요. 일에 대한 애착은 연우 못지않아요. 그렇다고 그녀처럼 마음을 닫아 두고 차갑게 산 것은 아니에요. (웃음) 연우의 일에 대한 열정은 공감이 됐죠."

지난 3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엄정화는 이번 영화에서 아들, 딸을 연기한 아역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진짜 엄마를 대하는 것처럼 관심을 주는 아이들 덕에 위안과 힘을 얻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예뻤어요. 촬영장에서 아이들과 노느라 심심하거나 외로울 겨를이 없었죠. 아들 역할의 지훈이는 제 옆에 항상 붙어 있었어요. 이전에도 엄마 캐릭터를 했지만, 마음이 아프고 그리워하는 경향이 컸죠. 이번에는 아이들을 골려 주기도 하는 역할이어서 재밌었어요.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랄까. 두 아이가 제게 주는 관심이 정말 큰 힘이었거든요."

▶ 극중 잘 나가는 변호사 연우는 한 달간 아이가 둘 있는 아줌마로 살아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양 극단에 있는 두 여성 캐릭터를 접하면서 든 생각은.

= 둘 모두에게 안쓰러운 면이 있다. 한쪽은 싱글로서 누리면서 살고 싶어 하고, 다른 쪽은 결혼해 부업도 하면서 알뜰하게 열심히 산다. 뭐가 우선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서로 갖지 못한 것들이 있다. 무엇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사느냐에 따라 두 여성 중 어느 쪽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 영화 속에서 남편 성환 역을 맡은 송승헌과의 호흡은 어땠나.

= "와! 송승헌이다"였다. (웃음) 촬영 중간 중간 대기하면서도, 지나가는 걸 볼 때도 "와! 송승헌이다"를 연발했다. 서로를 봐 온 시간이 길다 보니 의외로 긴장을 했던 듯하다. 영화 속에서 연우와 성환이 처음 만나는 왁자지껄한 장면을 실제로도 처음 촬영했는데, 그때 어려웠던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승헌 씨는 굉장히 배려심 깊은,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더라.


▶ 실제로 다른 사람으로 사는 걸 꿈꿔 본 적이 있다면.

=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나 굉장히 큰 무대에서 콘서트를 하는 세계적인 디바의 모습을 볼 때면 제가 그렇게 되는 것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얘기하다 보니 또 일 얘기다. 가정을 꿈꾸면서 살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시집을 가지 않았을까. 가끔 결혼이나 가정도 꿈꿀걸 그랬다. 너무 생각을 안했다. (웃음)

영화 '미쓰 와이프' 스틸(사진=영화사 아이비젼 제공)
▶ 가족애를 강조한 이번 영화를 하면서 심경의 변화도 있었나.

= 엄마를 걱정해 주는 아이들과 아내를 아껴 주는 남편을 꿈꿔본 적이 없는데, 촬영 중간 중간 세트에서 승헌 씨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꼈다.

▶ 촬영하면서 가족,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들었을 텐데.

= 극중 연우는 부모의 사랑,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부모를 향한 원망, 상처를 지니고 살아 온 연우의 어떤 부분은 공감이 됐다. 연우에게도 구원의 손길 같은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제 실제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사춘기 때 '난 괜히 태어났어' '나는 외롭다. 아빠도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힘들 때면 항상 마음 속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대상이 있었다. 이번 영화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영화적 설정이 등장하는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실제 삶에 울림으로 와 닿은 측면이 있었다.

▶ 실제 엄마가 된다면 어떨 것 같은지.

= 정말 자신이 없다. (웃음) 무척 사랑할 자신은 있는데. 한 생명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제대로 이끌어 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이가 스스로 소중하고 사랑받을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면서도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나. 흔히 말하는 중2병에 걸린 아이를 떠올려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자신이 없다. 제 조카를 대할 때는 고모 역할에 머물지만, 부모가 되면 다를 것 같다.

▶ 영화를 통해 현대를 사는 다양한 여성상을 연기해 왔다. 작품을 하면서 한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나.

= 물론이다. 시간이 괜히 흐르는 것 같지는 않다. 작품을 하면서 그 여자로 살려 애썼던 시간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은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고 쌓여 있다. 어떨 때는 아픈 기억, 어떨 때는 좋은 추억일 수도 있지만, 묵직하게 남아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 좁아지는 여배우들의 입지에 대한 고민도 있는지.

= 단지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시대에 공존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바뀌면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지고 있다. '여배우는 항상 싱그러워야 한다'는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다.

배우 엄정화(사진=황진환 기자)
▶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울림이 큰 역할들이 있다. 그러한 울림이나 공감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도전하고 싶다. 액션 영화도 재밌을 것 같다. 준비 돼 있지만, 액션 영화 시나리오를 받은 적이 없다. 멋진 것이 있었다면 분명 했을 텐데 말이다.

▶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서 대작들과 겨뤄야 하는 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도 크겠다.

= 마음이 쓰인다. 조바심도 난다. 잠들기 직전까지 인터뷰 기사를 볼 때도 있고, 리뷰도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웃음) 우리 영화를 보고 따뜻함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영화가 나오고, 다양하게 사랑 받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으니까.

▶ 개인적으로 극중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있는 힘을 다해 많이 사랑해 주세요"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를 하나 꼽아 달라.

= 연우가 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안고 자신의 삶에 대해, 아버지를 미워했던 이유에 대해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사람은 아무리 성공을 해도 결국 기댈 데가 필요하다"는 대사가 나온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러한 것에 대한 가치를 깨닫는 연우가 안타까우면서도 크게 공감 갔다.

▶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

= 이야기의 무게감을 지닌 역할을 할 수 있는, 믿음을 주는 배우. "엄정화 나오니까 본다"는 말은 부담이면서도 큰 힘이다. 이 일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이러한 무게감이 줄지 않는 까닭에 제 열정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2008년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못 냈는데, 가수로서의 삶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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