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귀뚜라미, 잠자리 그리고 심학봉

‘지상의 모든 생물인 인간, 야수(野獸), 물고기, 가축, 조류는 사랑의 불길에 쇄도한다. 사랑은 모든 것의 왕이다.’

로마의 시성(詩聖)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의 <농경시(農耕詩)> 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랑의 욕망은 죽는 줄도 모르고 화려한 불길 속으로 날아드는 부나비와 같다. 어디 그뿐인가. 사랑에는 법전이 없고 사랑의 전투에는 모든 전술이 허용된다.

55살의 현역 심학봉 국회의원이 47살의 외간 여자와 벌인 백주의 부적절한 관계도 어쩌면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혜안처럼 ‘사랑의 불길 속으로 쇄도’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 사랑의 행위는 생식의 과정이고, 자신의 씨를 남기려는 종족 번식의 발로다. 그것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처절한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미물인 귀뚜라미는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밤이 새도록 쉬지 않고 노래한다. 그러나 그 노래는 달빛에 취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번식을 위해 암컷을 부르는 수컷들의 처절한 프러포즈다. 수컷은 목이 메도록 노래를 부르는 자신에게 가만히 다가오는 암컷을 차지한다.

잠자리라고 다를 것이 없다. 2인승 자전거를 타는 연인처럼 앞뒤로 붙어 날아다니는 여름 하늘의 잠자리를 낭만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잠자리의 수컷 생식기에는 주걱처럼 생긴 기관이 있다. 수컷은 암컷의 질 속에 다른 수컷의 것이 있으면 그걸 죄다 긁어낸 다음에야 사정한다. 그래서 짝짓기를 마친 다음에도 암컷을 놓아주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붙어 다니는 것이다. 자기 씨만을 받게 해 번식시키려는 본능 때문이다.


수컷 중에 번식과 관계없이 섹스를 즐기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번식을 위해 목숨 내놓고 벌이는 처절한 도전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욕망과 쾌락을 위한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인간 심 의원에게 남들이 모르는 종족을 번식해야 할 만큼 절실한 무엇이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늦게 찾아온 사랑에 눈이 멀어 부나비처럼 불꽃 속으로 뛰어든 것일까.

애석하게도 여러 정황상 심 의원의 행위는 공인으로는 도저히 이해받을 수 없는, 사회규범에서 크게 벗어난 일로 밖에 볼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난 7월 13일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었고, 낮술에 취해 호텔에 투숙한 뒤 평소 친분이 있는 여성을 불러 관계를 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이날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심 의원이 소속된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런 사실이 매스컴을 통해 급속히 알려지자 심 의원은 새누리당을 탈당한다. 그리고 경찰 조사에서 외간여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인정하고 그것이 강압적인 성추행이 아니라 화간이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조사 결과 혐의가 없다고 발표한다. 법률전문가들도 법대로라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성인 남녀가 좋아서 한 관계는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 의원의 행위가 죄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현행 법률로는 죄가 아니라지만 처자식이 있는 현역 국회의원이 상임위회의가 열리는 날 지방 호텔에 투숙해 외간 여자와 침대에서 나뒹군 행위는, 도덕과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죄다. 그렇다면 죄를 누가 정죄할 수 있을까.

인간 수컷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성욕이라는 마그마를 육체와 영혼 안에 품고 살지만 그것을 절제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이 있기에 욕망을 다스린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심 의원의 성(性)에 관한 인식은 귀뚜라미나 잠자리보다도 못하다. 밤새 암컷을 부르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는 수컷 귀뚜라미의 처절한 인내심도 없고, 자기 종족의 번식을 위해 어지러운 공중곡예를 하는 잠자리의 담대함도 없다.

심 의원은 ‘혐의가 없다’고 해서 한숨 돌리고 여론이 잠잠해질 것을 숨어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그나마 귀뚜라미나 잠자리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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