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돈 나올 구멍 막아놓고…세금 깎아 경제살리기?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자료사진 (사진 = 스마트이미지 제공)
씀씀이가 점점 커져서 지출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지출을 따라가지 못해 계속 적자가 나는 가정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근근이 마이너스 통장 대출로 지출을 감당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이 가정은 파산하고 말 것이다.

이 때 가장은 선택을 해야 한다. 씀씀이를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거나 둘 중 하나다.

가계부채 1100조원 시대. 많은 가정들이 이런 선택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대다수 가구는 월급이 늘지 않으니 씀씀이를 줄인다. 그 결과, 소비와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가계 빚이 가져오는 구조적인 문제다.

◇ 씀씀이 못 줄이는데, 돈 나올 구멍도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종민 기자)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직면한 선택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세수는 예상보다 적게 들어오는데, 돈을 써야할 곳은 계속 늘어난다. 그래서 지금 나라의 마이너스 통장 격인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정부는 마이너스 통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미래 세대가 다 갚아야할 빚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두 번이나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예정에 없던 수십조원의 국채부담도 추가됐다.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선택도 두 가지다.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 수입을 늘리거나. 그런데 지출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지출을 중심으로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게다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사령탑을 맡은 이후 경제 체력부터 살린다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썼다. 한마디로 정부 지출을 과감하게 늘리는 것이다.

씀씀이를 줄이기 어렵다면, 어디선가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 경기를 부양하면 자연히 세금이 늘어날 것이라며 돈을 풀었지만, 3년 내내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세수부족 현상만 심해졌다.

근본적인 대책은 결국 세제개혁이다. 따라서 세법개정안은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할 것인가 이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들어오는 재원이 있어야 지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3년차에 내놓은 세법개정안에는 세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야당이 주장해 온 법인세 인상은 차치하더라도, 지난번 연말정산 대란으로 연봉 5500만원 이하 직장인의 소득세 부담을 거의 없애버리는 바람에, 임금노동자 절반이 소득세가 면제되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이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을 다 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실제로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정치적 부담이 있는 사안이라고는 ‘종교인 과세 재추진’ 정도가 전부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정운영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세금으로 경제살리기, 위험한 정책"

오히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을 '경제활력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세금을 깎아줄테니 청년을 고용하고, 세금을 깎아 줄테니 체크카드와 현금을 더 쓰라는 식이다.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의 미용성형 수술에는 부가세까지 환급해주겠다는 대책까지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살리기 주문에 세금정책까지 총동원된 모양새다.

그러나 세금정책을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쓰겠다는 발상에 대해 세금 전문가들은 원칙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꼬집는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금은 경제 상황을 뒤따라가는 것"이라며 "세금이 먼저 앞서나가서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자칫 국가 세수가 부족해질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단언했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그나마 세수를 늘리겠다고 도입한 제도는 대기업의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 것과 업무용 차량의 사적 사용에 대해 세금혜택을 제외하겠다는 것 정도다. 그것도 청년고용증대세제 등으로 세금을 깎아준 것을 빼고 나면 실제 세수증대 효과는 연간 1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높이겠다던 대기업의 실효세율도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0.12%p 소폭 올리는데 그쳤다.

지난 3년 동안 평균 6~7조원 가량의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올해도 11조8천억원의 추경예산 가운데 5조원이 넘는 금액이 세수부족분을 메꾸는데 들어갔다. 무한정 국채를 발행할 수도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나중에는 지출하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안 교수는 “이렇게 세입여건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 결국 이것은 앞으로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고 지적했다. 이것저것 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했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공약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 1년에 2천만원 꽉 채워 굴릴 수 있나...서민에겐 '그림의 떡'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정부가 서민들의 재산형성을 돕겠다는 취지로 내놓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ISA를 놓고도 부자감세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5년 만기인 ISA 계좌에서 펀드나 적금 등 금융상품을 운용해서 벌어들인 수익은 200만원까지는 비과세되고, 200만원이 넘는 수익은 9.9%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반 이자나 배당소득세가 15.4%니까 훨씬 이득이다.

그런데 ISA통장은 연간 납입한도가 2천만원이고 통장 개설에 소득 제한이 없다. 금융종합과세대상자 13만8천명을 빼면,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사실 일반 서민들은 1년에 2천만원씩 돈을 넣을 여력이 없다. 서민 재테크 수단인 재형저축 가입자들의 평균 납입금을 봐도 1년에 24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1년에 2천만원, 5년 동안 1억원이라는 충분한 돈을 계좌에 넣어 굴릴 수 있는 부자들에게 비과세나 분리과세 혜택이 크게 돌아간다. ISA가 부자들에게 세금 깎아주는 방편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세법개정안은 다음달 11일 국회에 제출된다. 야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점, 그리고 ISA 만능통장의 혜택이 부자들에게 집중되는 점 등은 앞으로 국회에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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