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제네바의 유엔 사무국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뉴질랜드 출신 데이비드 하이드(22)는 현재 직장 근처에 텐트를 치고 노숙 중이다.
하이드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급 인턴이라 돈이 없어 노숙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오히려 "부모가 금전적으로 지원해줄 형편이 못된다면 이것 말고 다른 방도가 있나?"라고 되물었다.
물론 출근할 때는 매일 깔끔한 양복 차림을 갖춘다. 하지만 실상은 양복 위에 늘 매고 다니는 배낭 안에 휴대용 가스렌지를 지참해 다니는 것이다.
완벽히 방수가 되지 않는 텐트 탓에 날씨가 나쁠 때면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도 셀 수 없다.
게다가 그가 노숙 중인 곳은 직장 동료들이 퇴근 후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클럽 근처다. 아무 걱정 없이 퇴근하는 이들을 볼 때면 속도 쓰리다.
유엔이 무급 인턴십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유엔 공식 홈페이지에는 인턴십이 무급이며 모든 소요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 때문에 세계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하는 유엔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는 비난도 쇄도했었다.
하지만 주요 국제기구처럼 소위 '고스펙'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들일수록 오히려 무급 인턴십 등에 더 무책임한 경향도 있다. 무급이어도 경쟁자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특히 제네바는 특별히 무급 인턴 일자리가 많기로 유명한 도시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제네바에 지부를 두고 있는 유엔 등 다른 국제기구들 대다수가 관행적으로 무급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열정만 강요하는 '관행' 때문에 '신(新) 난민'까지 나타나자 청년들은 공분하고 있다. 최근 제네바에서는 인턴 노동자들이 무급 인턴십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 이런 제도는 유엔이 표방하는 세계인권선언을 어기는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이드는 "무급 인턴 자리를 수락한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사표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 그만둬 버리면 이력서에 넣을 경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