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 앞에서 만난 택배 기사 최모(42) 씨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담겼다. 날씨도 더운데 전화 걸 때마다 부과될 요금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는 것.
'음성 통화 무료'라길래 곧바로 요금제를 바꾼 최 씨는 오히려 '요금 폭탄'을 맞게 됐다.
◇ '음성 무제한?'…택배 기사 등 생계형 이용자는 '요금 폭탄'
업계에 따르면 택배 기사 통화 10통 중 9통은 '050'으로 시작되는 안심번호로 이뤄진다. 이는 자신의 개인 번호가 택배 기사 등 외부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고객의 실제 전화번호 대신 050으로 시작하는 가상 번호 서비스다.
문제는 이같은 생계형 통화 이용자들이 거는 '050 번호'는 이동통신3사의 '무제한 음성 통화'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화료를 별도로 내야 하는 '부가 통화'다.
이통 3사는 특정 양의 부가 통화만 무료로 제공한다. 요금제가 낮을 수록 무료 제공량도 적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월정액 5만원대부터 통화 300분이 무료다. 그보다 낮은 요금제에서는 50분에 불과하다. 초과하면 초당 1.8원씩 부과된다.
KT는 더 짜다. 월정액 5만원대부터도 200분만 제공되고, 4만원대 이하에는 고작 30분만 무료다. 고객 한 명 당 30초만 잡아도, 하루에 100통씩 전화하는 택배 기사는 하루도 못 가 무료 제공량을 다 써버리는 셈이다.
생계형 부가 통화 이용자에게 음성 무제한 혜택은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각각 '050 추가 300분', '050 안심 300분' 상품을 내놨다. 월정액 3000원에 매달 '050 통화, 300분'을 무료로 제공하는 부가 서비스다. SK텔레콤은 지난달 31일, LG유플러스는 지난 4일 출시했다. 데이터 요금제 출시 3개월 만이다.
KT는 아직이다. 다만 "출시 준비가 거의 마무리됐고 이번주 중에 선보일 것"이라고 KT 관계자는 전했다.
이통사의 '050 통화 서비스'에도 택배 기사들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300분이라고 해봤자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300분이라해봤자 따져보면 5시간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주 5일씩, 20일만 일한다쳐도 무료로 제공되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15분에 불과하다.
특히 명절 등 대목에는 택배 기사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밤새 일할 정도로 물량이 쏟아진다. 그만큼 전화를 걸어야하는 고객도 몇 배로 늘어난다. 하루 15분 무료 통화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택배 기사 최 씨는 "우리도 똑같은 데이터 요금제 고객인데 누구는 300분이든 3000분이든 마음껏 쓰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겨우 15분 주는 것 갖고 무제한 통화라고 하냐"면서 "돈 내고 돈 벌어야하는 형국이니 환장할 노릇"이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 '050'은 부가통신사업자 것…이통사 '접속료 때문에 적자' 구조
'통화 무제한'이라면서 통화에 '제한'을 둔 이통사. 데이터 요금제로 인한 적자를 만회하려는 꼼수일까? 업계 관계자는 '부가 통화를 무제한 제공하면 통신사는 끝" 이라고 말했다.
050 번호는 이통3사가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다. 세종텔레콤, 한국케이블텔레콤 등부가통신사업자들이 운영하는 것이다. 택배 기사가 050 번호에 전화하면 이통3사를 거치고, 050사업자 등에 연결, 다시 이통3사를 거친 뒤에야 고객에게 닿는다.
택배기사가 초당 1.8원의 통화료로 050 전화를 걸면 이통사는 050사업자에게 접속료 36원을 내고, 050사업자는 착신 이통사에 접속료 일부인 20원을 돌려준다. 게다가 발신 이통사는 050사업자에게 추가로 지능망이용대 9원, 서비스개발대가 4원을 더한 13원을 더 줘야 한다. 호당 29원 가량의 접속료를 이통사가 내야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가 통화는 접속료에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음성 무제한 서비스에 부가 통화까지 모두 무제한으로 넣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더구나 "050 이용자 중에는 생계형도 있지만 편법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어 이를 구분짓기가 어렵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앞서, 지난 5월 초 이통3사의 데이터 요금제 출시 당시, 이통사는 물론 정부와 새누리당은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택배기사와 대리기사 등 약 300만 명이 혜택을 보고 최대 70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며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