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덧붙인 창작물인 '팩션'의 유사성 판단이 법원의 몫으로 넘어간 셈이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소설가 최종림(64) 씨는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암살의 최동훈 감독과 제작사 케이퍼필름, 배급사 쇼박스를 상대로 100억 원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최 씨는 영화 상영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함께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처분 심문은 13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최 씨는 영화 암살이 자신의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출판사 생각나눔)를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4일 재출간된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는 1945년 8월 대한광복군이 암살단을 조직해 친일파 등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독립을 쟁취한다는 가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암살의 연출·시나리오를 맡은 최동훈 감독은 "최 씨의 소설을 알지 못했고, 소설은 암살과 전혀 다른 전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씨가 소설과 영화의 유사점으로 꼽은 것은 먼저 여성독립투사를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의 여주인공 황보린은 백범 김구의 행정비서 출신으로 광복군 87명 가운데 한 명으로 조선에 파견된다.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은 만주 지청천 장군의 한국독립군 제3지대 포수계 저격수 출신으로 비밀 암살작전에 투입된다.
제작사 측은 "소설 속 황보린은 경북지사 암살에 한 차례 투입되지만 주된 임무는 독립운동 지원자금 운반책으로 이후 상황실에서 근무하는데, 남자 주인공들과 삼각관계에 빠져 갈등하는 캐릭터로 묘사돼 있다"며 "황보린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며 신념을 지키는 영화 속 저격수 안옥윤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라고 맞서고 있다.
"여성 저격수는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레지스탕스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에서 수 없이 등장하고 있는 캐릭터로, 남자현·이화림 열사도 실제로 무장한 여성 독립운동가였다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어 여성 저격수의 설정이 소설만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여성독립투사 소재·공간 배경 유사"…"역사적 사실은 개인 소유 아니다"
반면 제작사 측은 "소설은 1945년 8월에 임시정부 요인 100여 명 이상이 일왕 생일 파티가 열린 총독 관저 연회장을 급습해 몇 발의 총성 뒤 총독·고관들을 인질로 삼아 조선총독부로 이동해 총독부의 통치기능을 접수한다는 내용이지만, 암살 속 결혼식장의 경우 주인공들이 암살 타겟을 저격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클라이맥스 공간으로 설정돼 있다"며 "장소의 배경, 설정, 기능 등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단순히 생일파티와 결혼식이라는 기본 상황만으로 유사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최 씨는 영화 말미 김구와 김원봉이 스러져간 독립투사들을 위해 잔에 술을 따른 뒤 불을 붙이는 장면 역시 소설과 유사하다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제작사 측은 "김구 선생과 김원봉 선생이 술잔에 불을 붙이며 죽은 동지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해방을 맞이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표현으로, 동양적인 보편적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연출된 장면"이라며 "더욱이 흡사하다고 주장하는 소설 속 장면은 정안수를 떠놓고 조선으로 파견될 대원들의 무운장구를 조상에 기원하는 장면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유사성에 대해서도 제작사 측은 "암살은 김구 선생의 한인 애국단과 김원봉 단장이 이끄는 의열단의 행적을 토대로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며 "반면 코리안 메모리즈는 1945년 광복군의 국내진입작전, 김구 선생의 총독부 인수작전과 아베 총독의 항복, 광복군 요원이 이승만을 저격하는 가상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만큼 두 작품 사이에 역사적 사실의 유사성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의열 활동과 암살 작전은 1920, 30년대 일반적인 항일 무력투쟁의 방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로, 특정 창작자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은 민족의 공통된 기억이며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창작자들의 공통된 영감의 원천이다. 이것은 어느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를 주장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