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오늘 뭐했지?]K리그 최초 50골의 주인공 김용세

1983년 시즌 종료 후 모습. 오른쪽이 K리그 최초 개인 통산 50골의 주인공인 김용세다. (자료사진=대한축구협회)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K리그를 대표하는 역대 공격수 중에는 190cm가 넘는 장신들이 꽤 많습니다. 최근 맹활약하는 김신욱을 비롯해 116골을 넣은 우성용, 정성훈 등이 대표적입니다. 외국인 선수로 눈을 돌리면 샤샤, 라돈치치도 있었죠. 50골 이상을 넣은 190cm 이상 공격수만 7명이나 됩니다.


'느리다', '기술이 부족하다'는 장신 공격수에 대한 편견이 있지만, 남들보다 한 뼘 가까이 큰 키는 골을 넣을 수 있는 큰 무기임에 분명합니다.

K리그 초창기에도 장신 공격수가 맹활약했는데요.

개인 통산 최초 50골의 주인공도 192cm(공식 기록) 장신 공격수였습니다. 바로 원조 고공 폭격기인 김용세가 그 주인공입니다.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8월18일은 장신 공격수 김용세가 K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50골을 터뜨린 날입니다. 1983년 K리그 출범과 함께 유공에서 활약한 김용세는 8년 만에, 이번에는 일화 유니폼을 입고 50번째 골을 터뜨립니다.

동대문구장에서 일화-유공전이 열렸는데요.

역시 관심사는 김용세의 첫 50골 달성 여부였습니다. 당시 김용세는 7월22일 현대전에서 49번째 골을 넣은 뒤 한 달 가까이 아홉수에 걸려있는 상태였습니다. 유공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이주, 백종철 등 측면 공격수들이 계속 김용세의 머리를 향해 공을 띄웠는데요. 하지만 현 K리그 챌린지 강원 FC 감독이자 아이돌 샤이니의 민호 아버지 최윤겸의 악착 같은 수비에 막혀 크로스를 머리에 제대로 맞히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일화는 이광종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0-1로 끌려다녔습니다.

하지만 종료 3분전 극적으로 50번째 골을 넣을 찬스가 왔습니다. 바로 페널티킥이었는데요. 송선호의 핸들링(당시 표현대로) 반칙으로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박종환 감독은 망설임 없이 김용세에게 킥을 지시했습니다. 박종환 감독의 배려였겠죠.

결국 김용세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K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50골을 달성하게 됩니다.

대기록이 작성됐지만, 말도 많았습니다. 일단 페널티킥으로 50번째 골을 넣었다는 점부터 비난의 목소리가 있었고, 당시 일화가 이기지 못한 이유가 '김용세 50골을 의식해서 찬스를 날린 탓'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페널티킥도 득점 수단의 일부인 만큼 김용세의 50골의 의미가 퇴색될 이유는 없겠죠.

사실 K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50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김용세지만, 이상하게 득점왕과 인연은 없었습니다. 1985년에는 피아퐁과 12골로 득점 공동 선두였는데요. 출전 시간이 많았던 탓에 득점왕을 놓쳤습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둘의 출전 시간도 같았는데요. 하지만 2시간 먼저 열린 일화 경기에서 김용세가 90분 동안 득점이 없자, 이후 열린 럭키금성 경기에서 피아퐁은 45분만 뛰고 교체됩니다.

김용세는 통산 165경기에서 53골을 기록한 뒤 1991년 은퇴했습니다. 이후 1997년 윤상철이 최초로 개인 통산 100골을 돌파했고, 현재 이동국은 통산 175골로 K리그 최다골 기록을 계속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50골이 다소 적어 보이지만, 김용세의 50골을 시작으로 K리그의 기록들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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