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청년 고용'…발표대로 된 적 없다

(사진=청와대 제공)
사상 최대 규모인 재벌 기업들의 청년 고용 대책.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은 언제나 미미했다. 최근 앞다퉈 발표하는 대기업들의 청년 고용 대책을 뜯어보면 결과는 '구두선'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대기업들의 분발을 촉구한 이후 너도나도 청년 고용 대책을 발표하고 있고 삼성과 현대기아차그룹, LG, SK 등 주요 그룹의 청년 고용 규모가 8만 명에서 10만 명에 이른다.

삼성그룹은 지난 17일 '청년 일자리 종합 대책'을 통해 앞으로 2년간 총 3만명의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고용 디딤돌'로 3천명, '사회 맞춤형' 1,600명, 직업 체험 인턴 및 금융영업 4,000명에 신규 투자를 통해 2017년까지 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총 1만 1,400명에게 청년창업 활성화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만 500명을 채용하는 대대적인 청년 일자리 창출 대책을 발표했다. 그룹 차원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추가로 연간 1천개 이상의 청년 일자리 확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SK는 '고용 디딤돌'과 '청년 비상(飛上)' 프로그램을 통해 내년부터 2년간 4천명의 인재를 육성하고 2만 명의 창업교육을 지원해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진출시키겠다는 복안을 최근 발표했다. 사면으로 풀려난 최태원 회장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에 공헌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다.

(자료사진)
LG는 201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면 직간접적으로 13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17일 밝혔다.

한화그룹은 올해 하반기 고용을 상반기의 2배 가까이 확대하는 등 2017년까지 총 1만 7,569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당초 예정보다 약 35% 늘린 규모다. 이어 2016년에는 5,140명, 2017년에는 6,700명을 뽑을 예정이다.

롯데그룹 역시 오는 2018년까지 인턴사원을 포함해 2만 4,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대기업들의 채용 계획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인턴 사원 채용이고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숫자다. 채용 인원 부풀리기이자 정규직을 정식 채용으로 받아들이는 청년과 국민 정서에 동떨어진 발표다.

현대기아차그룹만 정규직 채용 인원을 구체적으로 적시했을 뿐 삼성 등 다른 대기업들은 정규직 규모를 구체화하지 않았다. 한 달 150만원짜리 인턴 사원에 드는 비용을 그룹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부분만 돋보이게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3년 전세계적으로 50,416명의 신규고용창출을 했으나 국내는 5,096명 늘었을 뿐이다. 전체 고용 인원의 1/10에 불과하며 9/10는 모두 해외에서 고용한 인원이다.

심지어 LG그룹은 직간접적으로 13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표했는데 10조원을 투자하더라도 13만 명은커녕 2~3만의 신규 고용을 만들어내기도 버겁다.

◇ 롯데의 청년 고용 대책은 '형제의 난' 뭇매 무마용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롯데의 청년 고용 대책은 더욱 의문시 된다. 2018년까지 인턴 사원을 포함해 2만 4,0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롯데의 기업 규모로 볼 때 그렇게 많은 정규직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지조차 의문이다. 따라서 '형제의 난'에 대한 여론의 뭇매를 피해보려는 속셈으로 해석된다. 롯데는 직접 고용인원이 9만 5,000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상당수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거나 인턴 사원들이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발표하는 신규 채용 규모는 청와대와 정부에 과시하려는 목적이 1차이고, 부차적인 목적은 언론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단 한 번도 대기업들의 발표대로 채용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최태원 회장만이 청년 고용 의지가 강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 사면·복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0시 6분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출소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중 미소짓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청년 고용 발표를 이행할 대기업으로는 SK일 것으로 예측된다. 올 초 SK에서 물러난 한 고위 임원은 "최태원 회장은 빈말을 거의 하지 않는 성향인데다 마음 속으로 국민과 정부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을 통해 보답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나머지 기업들은 말로는, 언론 발표상로는 '청년 고용 절벽'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섰으나 실제로는 기업의 사정상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신규 사업이 별로 없는데다 국내 사업이 한계에 봉착해 있어 무작정 청년 고용을 늘리기 어렵다는 고충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쌓아둔 6~7백조원의 사내 유보금을 쓰며 고용을 늘리겠다는 게 아니라 정부의 시책에 보조를 맞추려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태도인지라(정부에 밉보이기 싫어) 청년 고용이 크게 늘지 않고 발표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2011년 대기업들은 대졸 신입 사원을 대거 뽑겠다고 발표했다. 2011년 1월에 LG그룹은 대졸 신입사원 6,000명, 경력 3,000명, 기능직 8,000명 등 1만 7,000명을 채용한다고 발표했으나 발표 숫자를 채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2011년 채용규모를 2만 5천명, 현대기아차그룹도 2010년의 5,000명보다 10% 늘리겠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채용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청년 실업률은 오히려 높아졌다. 지금까지도 청년 실업은 계속 악화돼 현재는 10.4%로 역대 최악이다.

이때도 재벌 기업들은 1년 전보다 10% 이상씩 채용 규모를 늘리겠다고 했고 전경련은 30대 그룹이 113조원을 투자해 11만 8천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실제 투자와 채용 규모는 턱없이 못 미쳤다.

◇ 채용 발표 규모보다 크게 줄어들 것

따라서 '대기업들이 청년 고용과 투자를 늘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화답하는 듯이 대규모 고용을 예고했다손 치더라도 최종 채용 규모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청년 고용이 말처럼 쉽지 않고 의지만 갖고 되는 일도 아니다. 기업 환경이 개선되고 일거리가 많아지면 고용하지 말라고 해도 고용을 늘리는 것이 기업들의 속성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경제 활성화와 청년 고용난 해소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채용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고용 빙하기'를 일부 녹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언정 근본 대책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노동개혁의 최대 쟁점인 '임금피크제'와 '해고요건 완화'라는 재벌 기업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전 포석용, 여론 무마용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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