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된 '1억원 수표'

대법관들 왜 8대 5로 갈렸나?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 (자료사진)
'180도 뒤집힌 법정 진술'에도 대법원이 20일 전 국무총리인 한명숙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9억 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주요 근거는 '1억원권 수표'였다.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달러, 수표 등으로 9억 원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는 1심 법정에서 "한 의원에게 어떤 정치자금도 제공한 사실이 없다. 비겁한 나로 인해 누명을 쓰고 있다"고 자신의 검찰 진술을 뒤집었다.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를 되찾을 욕심과 수사 초기에 검찰 제보자가 찾아와 협조하지 않으면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암시적으로 겁박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허위진술을 하게 된 것"이라는 게 한 전 대표의 법정 증언이었다.


이 때문에 한신건영의 비밀장부(B장부), 채권회수목록, 한 전 대표가 감방에서 지인들과 나눈 접견대화 자료 등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은 1심까지만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한 전 대표가 1차 금품 전달 당시 건넸다는 1억 원권 수표를 한 의원의 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쓴 점에 주목했다.

함께 기소된 한 의원의 비서와 한 의원의 동생은 두 사람간 채무 관계라고 해명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한 의원이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1심을 깨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 8300여만 원을 선고했다.

"1억 원권 수표를 한 의원의 동생이 사용했더라도 그 수표가 한 의원에게서 동생에게로 전달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1심 판단이 뒤집힌 거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 역시 "한 의원의 동생이 잘 모르는 사이인 한 전 대표나 제 3자로부터 수표를 받았을 가능성이 없어 한 의원이 건넸다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한 의원이 2억 원을 돌려준 점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부도 뒤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 한 다음날 비서를 통해 돌려받았다며, 두 사람이 두 차례 통화한 사실을 바탕으로 금품수수의 정황으로 인정했다.

이 외에도 한 전 대표가 9억 원 자금을 조성한 건 맞지만 정치자금으로 제공한 게 아니라 한 의원의 비서에게 빌려주거나 공사 수주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항소심과 같이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한만호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원심의 유죄 판단은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관련 법률을 오해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대법관 13명 가운데 5명(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은 1억권 수표 등 3억 원을 건넨 1차 금품수수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정반대 진술을 했기 때문에 수사기관 진술을 증거로 삼으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1차 정치자금 수수 부분은 객관적인 증거자료인 1억 원권 수표와 2억 원 반환에 의해 유죄로 인정되지만, 한 의원이 집에서 받은 것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2, 3차 수수 혐의는 인정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이들 5인의 대법관은 "한 전 대표는 검찰 진술 당시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자금의 정당한 사용 내역을 밝히지 못하면 횡령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다가 수사협조의 대가로 한신건영의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서 "허위나 과장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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