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스크린 타고 호숫가에 내려앉은 희망의 노래
② "음악이 곧 역사"…스크린 속 뮤지션들의 외침
③ 갈등 누그러뜨리는 음악적 교감 직시한 카메라
'캄보디아의 잊혀진 로큰롤'(존 피로치 감독, 미국)도 음악이 곧 역사라는 점을 실감나게 했다. 왕 스스로 작곡도 하고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문화예술과 대중음악이 번창했던 캄보디아는 1960년대에 세상의 모든 노래가 번안가요로 소개되던 나라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크메르루주 공산군이 나라를 장악함에 따라 학살되거나 행방불명된, 창의성과 예술성을 뽐내며 대중과 호흡했던 신 시사무트나 올라롱 같은 국민가수와 뮤지션들의 비극을 보여 준다.
웃음과 음악이 사라진 나라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이러한 비극적 역사를 초래한 데에 미국의 책임을 암시하는 전 미국대사의 증언, 강제노역과 예술탄압,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증인들이 기록영상과 함께 증언하는 장면은 끔찍하고 서늘하다. 대중음악은 크메르의 문화유산이며 절대 과거가 잊히면 안된다고 증인들은 강조한다.
1960년, 70년대에 활약한 밴드 이야기인 '전설의 세션 밴드 뢰킹 크루'(데니 테데스코 감독, 미국)도 만드는 데만 18년이 걸린 역사물이다.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팝아트가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의 영국 사회와 뮤지션을 보여주는 '소울 보이즈, 스팬다우 발레'(조지 헨켄 감독, 영국)도 시대의 영상과 인물들, TV 등의 시청각적 자료를 통해 뮤지션들은 음악을 넘어 시대를 노래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체코의 국민가수 마르타 쿠비소바'(올가 소메로바 감독, 체코)도 1960년대 체코 공산주의 체제에 맞서 망명을 거부하고 애국심의 신념을 고수해 자유의 상징이 된 여가수에 관한 다큐다.
◇ 전설의 록밴드 멤버 어머니 "이제 그만 돌아다니고 취직 해야지"
고르바쵸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1988년 구소련에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공연하고 러시아 대중이 환호하는 장면, 구소련 공연에서 부르고 동서독 통일과 장벽붕괴를 예고한 노래가 된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에 대한 증언, 베를린 필하모니와의 협연장면, 미국 공연에서 공군이 비행기로 하늘에 그려준 'Scorpions'란 글자와 30만 군중의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 온 멤버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제 그만 돌아다니고 취직을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했다는 장면에서 폭소가 터진 다큐였다. 60년대부터 1억 장의 음반이 팔린 전설적인 그룹인데도, 멤버들의 겸손하고 소탈한 유머가 곳곳에 녹아 있어 더욱 즐거웠다.
영화제 최초로 3D 상영된 '메탈의 성지 바켄'(노르베르트 하이트커 감독, 독일)은 매년 독일 바켄에서 열리는 메탈 락페스티발에 관한 흥미진진한 다큐다. 작은 마을에 접한 넓고 넓은 공터에 남녀노소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수십 만의 인파가 진흙속을 뒹굴며 3박 4일 메탈 페스티벌을 즐기는데, 딥 퍼플, 알리스 쿠퍼 등이 뛰는 무대와 관중, 페스티발 개최 과정과 분위기를 거대한 스케일 안에 담아내 장관을 보여준다.
메탈을 잘 몰라도 '광기'와 같은 현상의 선기능이 흥미진진하다. 특히 평소 경제적 우위, 엄격성과 완벽성을 추구한다는 선입견을 주는 독일이지만, 음악 다큐를 통해 본 이 나라는 문화에 대한 또 다른 강국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표현의 자유와 해방구의 필요성에 대한 문화적 개방성을 주목하게 한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철저한 반성, 젊은이들이 날 것을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분출할 수 있는 자유를 문화적으로 조성해 주기 때문에, 독일에서 스콜피온즈 같은 세계적인 음악 그룹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념에 젖었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