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상황서 전화위복…남북관계 물꼬 텄다

유감표명 해석 논란 남겼지만 과거보다 진일보…대승적 타협으로 관계개선 첫 발

남북이 일촉즉발의 무력충돌 위기를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의 기회로 삼는 지혜를 발휘했다.

남북은 25일 새벽 43시간에 걸친 마라톤협상에 종지부를 찍고 6개 항에 이르는 공동합의문을 도출했다.

2008년 금강산 피격 사건과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오랜 교착 상태이던 남북관계에도 출로가 뚫렸다.

물론 핵심 조항인 북한의 사과는 다소 미진한 점이 있다.

합의문 2항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주어를 특정한 사과'라는 우리 측 입장이 반영된 것이란 평가지만 유감 표명 대상이 모호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어(북측)가 있긴 하지만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과 이로 인해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의 책임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북한대학원대학 양무진 교수는 "도발에 대한 시인, 사과가 아니라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한 유감 표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남북간 해석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극도로 인색한 북한의 전례를 감안하면 이 정도도 진일보한 결과라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다.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 400~500차례의 대남도발을 일으켰지만 사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은 1968년 청와대 기습사건 1건 뿐이다.

그나마 이 조차도 발생 4년여가 지난 뒤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극비 방북했을 때 간접적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합의는 무엇보다 남북이 벼랑 끝 위기 상황에서 한 발씩 물러서며 대승적 타협을 이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무한 대치 상황을 대화 국면으로 돌려놓음으로써 관계 복원의 소중한 첫 발을 내디뎠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나름대로 대북 원칙론을 견지함으로써 북한 도발의 악순환을 끊는 시발점을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부가) 유감 표명 정도로 합의한 것은 어느 정도 아량을 발휘한 것으로 본다"며 "이렇게라도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계기를 만든 점에서 잘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은 사실상 사과를 하면서도 체면은 지켰고 '발등의 불'인 대북 확성기 방송을 끄는 성과를 거뒀다.

이산가족 상봉 진행(합의문 5항)과 민간교류 활성화(6항)에 합의한 것은 남북이 서로 주고받는 윈윈협상으로 성숙한 면모를 보인 대목이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빠른 시일내 당국회담 개최를 약속한 것은 합의문의 제1항을 차지하며 남북이 미래로 향하는 가장 중요한 디딤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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