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 1919년인가? 1948년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첫 구절이다. 이것만 봐도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건국은 1948년 8월 15일임에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국민들의 의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대한민국 건국 시기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한민국 건국 시기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는 응답이 63.9%로 나왔다.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라는 응답은 21.0%에 불과했다.(8월 18일 조사. 응답률은 5.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p)

이쯤되니 건국일이 무지하게 헷갈린다. 대통령이 말한 1948년이 맞는지, 아니면 국민 열에 여섯이 맞다는 하는 1919년이 옳은지.

먼저 1948년 7월 17일 제정, 공포된 헌법 전문의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당시 국회의장 이승만)

1948.7.17. 제정된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재건(再建)'이란 단어에는 "허물어진 건물이나 조직 따위를 다시 일으켜 세움"이란 뜻이 담겨져 있다. 즉 1948년 7월 17일 전에 원래 '무언가'가 있었다는 말이다.

현재의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적시하고 있어,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자체를 제대로된 역사관이라 칭하기 힘들다.


유신 직후 발간된 국민학교 6학년 국사교과서 122p
1972년 10월 유신 직후 발간된 국민학교 6학년 국사교과서(국정교과서. 116p~122p '일제하의 독립 투쟁')를 봐도 당시 정권 역시 상해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가 후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교과서 122p에 보면 "우리가 8.15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독립 투쟁을 보고 자유 우방들이 우리를 도왔기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독립 투쟁'이란 상해 임정하에서 펼쳐진 독립 운동을 뜻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2014년 10월 KBS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온 이인호 이사장
'건국일 논란' 얘기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인호 KBS이사장은 지난해 10월 KBS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독립국가의 일원이 된 것은 1948년 8월 15일부터다. 저는 1936년에 태어나서 일제 36년 그 얘기를 뼈아프게 들었다. 1919년에 건국됐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독립운동하고 피 흘리고 누구로부터 독립하고 왜 분단이 됐겠나. 우리 의지로 생각하면 우리는 일본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한 적 없다. 1910년도 강요된 합방이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역사학자라고 하는 분이 왜 이런 '말장난'을 하고 있는 걸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이사장 조부의 '친일 이력'과 연관을 짓고 있다.

이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 씨는 일제강점기 일 천왕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선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건국을 1919년으로 끌어올릴 경우 '조부의 친일'은 대한민국 역사의 중죄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엄연히 숨쉬는 있는 상해 임정을 굳이 평가절하하려는 자들의 속셈은 이 이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해 진다.

그러나 그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이승만 대통령 역시 상해 임정의 역사를 간과하지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은 국호를 임시정부에서 정한 그대로 '대한민국'으로 하고, 대한민국은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을 천명했다.

특히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으로 기산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 1년'으로 본 것이다. 이래도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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