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올 들어 두번째로 부정부패 척결을 선포하며 강력한 사정정국을 예고했다. 대검찰청도 발빠르게 전국 특수부 검사들을 모은 화상회의를 준비하는 등 밑작업에 나섰다. 최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인력까지 강화돼 검찰의 하반기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지난 1일 오전 검찰에 2015년 하반기 부정부패 수사 강화 지시를 내렸다. 어조는 강력했고, 지시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김 장관은 검찰이 주력해야 할 부정부패 대상을 총 4가지로 세분화하기도 했다. ▶공직비리, ▶중소기업인, 상공인을 괴롭히는 범죄(국가경제 성장 저해 비리), ▶국가재정 건전성 저해 비리(국민혈세 낭비 국가재정 비리),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전문분야의 구조적 비리(전문 직역의 구조적 비리) 등이다.
법무부는 대검찰청에 사전 예고없이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태 총장도 이날 오전 확대간부회의를 마친 뒤에 김 장관의 검찰 지시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이 앞장서서 사정 정국을 정재계에 공공연하게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는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화두로 던지며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법무부장관 출신인 황교안 국무총리도 이에 맞춰 "비리유형별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는 등의 총체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법무부도 청와대의 이같은 의지에 발맞춰 수사 독려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발언하고 총리도 적극 나설만큼 청와대가 이 부분에 워낙 의지를 가지고 있다보니 법무부 장관이 가만히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리 척결에 대한 윗선의 의지가 그만큼 강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집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검찰력을 통해 공직사회 기강을 잡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청와대의 속내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검찰도 발빠르게 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이번주 중으로 전국 특수부 부장 검사들의 화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각 특수부에서는 국회의원 비리를 포함해 각종 사건들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최근들어 검찰 수사력이 약화됐다는 내부의 위기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수사의 중심이 옮겨졌지만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대표적인 대기업 사정 수사로 시작했던 포스코 수사가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동력을 잃으면서 사실상 실패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수사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떠나 검찰 수사력이 약화되는 것처럼 여론이 조성되는 것은 조직 내부 뿐 아니라 정권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에 특수부 검사 7명을 새롭게 투입한 것도 침체된 특수부 수사에 활력을 주려는 법무부와 정권의 강한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3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직접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공표한 이후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으로 역풍을 맞은 것처럼 정권 차원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사정은 종종 부작용을 낳는다.
이 때문에 6개월만에 재기된 사정정국 선포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우려의 시선도 감지된다.
한 부장급 검사는 "검찰 수사는 외부에서 개입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직 판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요구와 기대가 크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검사도 "지금은 모든 요구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게 아니라 위에서 내려오는 형국이다. 특수부 검사들 입장에서는 무리해서라도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