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등에 탄 균형외교, 전인미답 길 간다

남방3각 대 북방3각 벗어나 능동적으로 현상변경 시도...잇단 저항, 험로 예상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상하이 공항에서 환송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통해 우리나라가 ‘균형외교’의 첫 발을 내디뎠다.

냉전의 잔재인 한·미·중 대 북·중·러 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실용적이고 능동적인 행보를 하겠다는 처신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중 결과는 일단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중 양국 정상이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해 분명히 경고했고 북핵 6자회담 재개에도 상당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에도 합의함으로써 한·일 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 안정을 선도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외교팀은 앞으로 더 큰 과제를 부여받게 됐다.

균형외교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 갈 길이 멀고 험하다. 본궤도에 올려놓는 데만도 안팎의 많은 저항이 예상된다.

당장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미국을 설득하는 게 급선무다. 시간도 다음달 16일 한·미정상회담까지 한 달여밖에 없다.

이번에 한·중 양국이 합의한 ‘의미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미국이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외교 고위 당국자는 “의미있는 6자회담에 대해선 미국도 동의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의미있는’이라는 것에 대해 미국과 중국간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에 미국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만약 10월 한·미정상회담이 6자회담 문제와 관련, 별 성과 없이 끝난다면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와 관계없이 북핵 해법은 장기간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미국이 대선 국면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균형외교에 대한 1차 평가 결과가 박해지면서 과거로의 회귀 요구가 커질 수 있다.


균형외교는 이처럼 우리 외교가 좀처럼 가보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이다.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성공을 거뒀지만 냉전 해체라는 세계사적 조류의 대격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0년 전 노무현 정부는 균형외교의 모태 격인 ‘동북아균형자론’을 내걸었지만 보수의 반격을 받고 좌절됐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GDP 등 국가 경제력 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국내적으로는 저성장과 양극화 심화 등 안팎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하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미들파워 외교는 우리에겐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는 공감대가 이뤄져있다.

특히 한반도 통일이라는 최대 국가 과제를 위해 균형외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 됐다.

다만 문제는 박근혜 외교팀이 과연 균형외교를 완성시킬 청사진을 갖고있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이번 방중 결정 과정은 청와대와 정부 내부에서도 이견이 크게 갈리는 등 매끄럽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방중 사실을 중국 측이 먼저 공개한 것을 봐도 우리의 주도적 결정이라기보다는 중국에 끌려다닌 측면이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을 놓고 미중 간에 오락가락했던 정부가 갑자기 균형외교 행보에 나섰다는 것도 좀 뜬금없다.

하지만 어찌됐든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고 이제 내릴 수도 없고 내려서도 안 된다.

그저 호랑이가 지칠 때까지 달리고 달리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우리의 저력을 시험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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