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체포 근거가 부족했고, 이를 막은 것은 정당한 저항이라는 판단에서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경찰의 마구잡이식 공권력 집행을 질타하기도 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는 경찰관의 현행범 체포를 방해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임모(2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임씨가 봉변을 당한 건 작년 10월 12일이다.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이모 경위가 이날 오전 7시께 강북구 수유동의 한 주점 앞에 출동했다. 곧이어 김모씨를 다짜고짜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해 순찰차에 태우려 하자 친구인 임씨가 가로막았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범죄자로 단정한 것에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임씨가 이 경위를 제지하면서 팔을 세게 잡아당긴 점을 문제 삼아 입건했다. 임씨는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이 경위는 "김씨가 술집 다른 손님 이모씨의 얼굴을 때려 두 일행이 대치 중이었기에 패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일행 간 언쟁은 인정했지만, 김씨가 이씨를 때렸다는 경찰 주장은 믿지 않았다. 폐쇄회로(CC)TV 등 증거나 증언의 구체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폭행 피해자인 이씨도 김씨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맞았다고 당일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실 확인도, 추가 조사도 하지 않았다.
박 판사는 "공소사실에도 '폭행 사건의 현행범으로 체포'라고 추상적으로만 돼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사기관조차 확신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행범 체포를 할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는지에도 법원은 의문을 제기했다.
시비가 붙은 양측 일행은 여성을 제외하고 모두 5명이었는데 출동한 경찰 역시 5명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충분히 통제해 차분히 조사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면 다음 상황에 해당해야 한다.
범인이 추적당할 때, 장물이나 범죄에 사용됐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한 흉기 등 소지한 때, 신체나 옷에 현저한 증거 흔적이 있을 때, 신분 확인 거부한 채 도망가려 할 때 등이다.
이런 법 조항에 비춰볼 때 당시 상황은 현행범 체포에 적법하지 않았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박 판사는 "신빙성 없는 경찰 공무원들의 진술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을 종합하면 '김씨가 이씨를 폭행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당시 공무집행은 적법성이 결여됐다"고 판시했다.
이어 "임씨가 김씨의 체포를 막으려 이 경위를 폭행했다 하더라도 이는 부당한 공무집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이므로 공무집행방해죄로 다스릴 수 없다"고 밝혔다.
정작 현행범으로 체포까지 됐던 친구 김씨는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현행범 체포가 적법한지는 체포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기초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불법 체포로 인한 부당한 신체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는 정당방위여서 위법성이 없다고 인정된다.
수사기관의 무리한 현행범 체포에 항의한 시민이 애꿎은 혐의로 수사-기소-재판을 거치면서 고통을 받는 관행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개선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