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 찍은 여진구 "갈라진 남북…안타깝고 슬퍼"

[노컷 인터뷰] '서부전선'서 열여덟 살 북한군 영광 역 맡아…"실제 나와 닮은꼴"

영화 '서부전선'의 주연을 맡은 배우 여진구가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배우 여진구(19)에게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서부전선'(감독 천성일, 제작 하리마오픽쳐스)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16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전쟁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솔직한 학도병의 모습에 끌렸다"고 답했다.

극중 여진구가 맡은 캐릭터는 나이 열여덟의 영광으로, 평범한 학생에서 하루아침에 북측 '제369 땅크(탱크) 부대' 막내가 된 인물이다. 영광은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와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전쟁이 어서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영광에게는 전쟁영웅의 느낌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실수도 잦은 모습이 담겼죠. 저 역시 영광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아요. 서부전선이 전쟁영화로 포장돼 있지만, 그 안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따뜻한 에너지가 가득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극 초반 비행기 공습 신을 롱테이크(하나의 숏을 끊김없이 담아내는 촬영 기법)로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더라. 찍으면서 동선 파악 등이 힘들었을 텐데.

= 전쟁 신은 최대한 현장감을 살리자는 것이 감독님의 의도였다. 동선도 문제였지만, 폭탄이 터지는 타이밍도 맞춰야 하는 등 실수 없이 해야 했기에 촬영 전 리허설을 많이 했다. 처음 보는 첨단 촬영 장비도 있었고, 나중에 CG를 입히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도 재밌었다.

▶ 북측 말은 어떻게 익혔나.

= 극중 영광이는 평양 사람인 걸로 설정됐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북한의 표준어. 평양 출신의 새터민 선생님으로부터 한 달가량 배웠다.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쓴 부분은.

= 표정과 감정 표현이었다. 영광 캐릭터가 전투 경험이 없는 친구이다보니 전쟁통에 홀로 남겨졌을 때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남복(설경구)과 있을 때는 진지함 위에 코믹한 모습을 입히려 애썼다.


영화 '서부전선' 스틸컷(사진=하리마오픽쳐스 제공)
▶ 1950년대 한국전쟁이 또래에게는 옛날 이야기로 느껴질 법한데, 영화에 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 제 또래나 더 어린 친구들에게 점점 생소해지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겪은 크나큰 상처가 없다보니 신경을 안 쓰게 되는 게 아닐까. 저 역시 전쟁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아 왔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큰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더라. 영광이 같은, 더 어린 군인들도 있었을 텐데….

▶ 전작 '화이'(2013)에서는 김윤석 등 충무로의 연기 잘하는 선배들과, 이번에는 설경구와 호흡을 맞췄다.

= 영화의 성격상 현장 분위기가 달랐다. 화이 때는 무거운 느낌이 가득했고,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현장이었다. 선배님들도 현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시는 것 같다. 매 작품마다 배운 점이 너무 많다. 이번에도 설경구 선배님과 둘만의 촬영이 많았던 덕에 배운 게 많다. 선배님은 평소에도 남복 캐릭터로 생활하셨다. 저도 저절로 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중요한 장면을 찍더라도 걱정을 덜게 되더라. 욕심 났던 캐릭터인 만큼 잘 소화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영광에게 정도 많이 들었다. (웃음)

▶ 서부전선은 배우의 연기 비중이 큰 연극적 요소가 강해 보인다. 접근법도 달랐을 텐데.

= 체계적으로 준비된 계산된 움직임보다는 현장에서 맞닥뜨리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맞다는 느낌이 들더라. 여태까지는 계획적인 연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 스스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하게 임했다. 뒤로 갈수록 마음이 더욱 편해지더라. 영광의 행동, 표정, 말투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런 점에서 특별했던 경험이었다.

▶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특히나 초반에는 전쟁통에 홀로 남겨진 어린 병사의 두려움이 잘 상상되지 않더라. 후반에도 '어느 정도의 감정일까' 싶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려 하면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부딪치면서 돌파해 나갔다.

▶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는다면.

= 많다. 영광이가 옥분이에게 "군대간다"고 짧게 하는 말도 그렇고, 남복에게 했던 욕에 대한 기억들도 많다. (웃음) 영화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데 "군인은 둘 중 하나다. 땅크를 버리고 총살 당하거나, 땅크를 갖고 귀향하거나"라는 대사를 할 때는 울컥했었다.

배우 여진구(사진=윤성호 기자)
▶ 또래인 영광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 실제 저와 성격은 다를지 몰라도 행동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해 온 역할 중에 영광이가 저와 가장 닮은 것 같다. 첫 촬영 때부터 느꼈다. 지금까지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옆에 두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저를 영광이가 동일시한 측면이 강하다. 촬영을 마치고 보내기가 안타까웠다.

▶ 현재 고3이다. 진로는.

= 대학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어서 대학에는 진학할 생각이다. 전공은 연극영화과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인이 된다는 데 대한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시련도 닥쳐올 것 같고, 여러 생각이 든다. 치맥도 먹고 싶고, 운전면허 따서 차도 몰아보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혼자 여행도 가보고 싶다.

▶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배우로 커가는 모습이다.

= 선배님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 배우는 것이 많다. 또래와도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청춘들을 위한 영화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런 영화를 찍고 싶다. '비트'(1997) 같은 영화 말이다.

▶ 영화를 끝내고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있었나.

=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는 현실 자체가 슬프고 안타깝다. 남북 관계가 좋아졌으면 한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물론 여러 입장들이 있겠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다들 하루 빨리 화해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 차기작은.

=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입을 준비 중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대입을 마치고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어두운 캐릭터를 한지 꽤 됐더라. 차기작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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