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중앙무대에선 공천권 헤게모니 장악을 염두에 둔 권력투쟁이 본격화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대한 친박계의 파상공세가 그렇고, 새정치연합에선 재신임 문제 일단락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표와 비주류의 갈등이 내연하고 있다.
계파간 권력투쟁 못지않게 치열한 것이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도농간, 여야간 갈등이다. 지난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년 총선 국회의원 선거구 수를 현행 246석 안팎의 범위에서 결정하기로 방침을 정하자 일부 농촌지역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농촌지역 의원들은 21일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한 뒤 "농어촌·지방 배려가 없는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지역대표성과 국토균형발전, 기형적 선거구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웠고, 강원과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에 특별선거구를 채택해 달라고 요구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이날 "획정위의 지역구 조정안은 비현실적"이라고 가세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300석 이내로 고정하고 지역구 의석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헌재가 제시한 2대1 인구편차를 맞추려면 인구밀도가 희박한 농촌지역 의석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권이 과연 선거구 획정위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작년 5월 말로 돌아가보자. 국회는 여야 합의로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선거 8개월 전인 8월 13일까지 국회로 하여금 선거구 획정을 위한 기준을 획정위에 넘기고, 획정위는 선거 6개월 전인 10월 13일까지 선거구를 정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정쟁과 게리멘더링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절차를 정해놓은 것이다. 지난 19대 총선때 이뤄진 선거구획정작업이 선거를 코앞에 둔 2012년 2월 27일까지 차일피일 늦춰진 것도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국회는 불과 1년 여전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지 않았다. 정치개혁특위는 갑론을박과 여론의 눈치만 살피다 8월 13일까지로 정해진 선거구획정 기준 시한을 맞추지 못했다. 국회가 책무를 다하지 않으니 공은 선관위 산하 선거구 획정위로 넘어갔는데도 정치권이 획정위 결론에 뒤늦게 딴지를 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다.
내용적으로도 농촌지역 지역구를 보장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자는 발상은 여론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우선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제도다. 소선거구제는 필연적으로 다수의 사표(死票)를 발생시켜 민의를 왜곡한다. 지역주의도 개선되기 어렵다. 현행 지역구도 하에서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를 경우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두 거대 정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은 역대 선거의 통계로도 이미 입증됐다. 비례대표를 줄이면 헌법의 취지는 무력화된다.
둘째, 비례대표가 축소되면 다양한 국민여론이 국회에 반영되는 통로가 좁아질 수 있다. 경제와 안보, 노동, 국방,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여성, 청년층 지도자가 국회로 진입하는 게 국민 전체를 골고루 대변하는 대의정치의 취지에도 맞다. 지역구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만 국회에 입성할 수 있다면 인재충원의 범위가 극히 좁아질 것은 불문가지다.
현행 지방자치제도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농촌의 지역대표성도 물론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이미 지난해 2대1 인구편차를 제시한 만큼 정치권이 헌법의 취지와 지역대표성의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선거구획정위 안에 반대하는 농촌지역 의원 중 어느 누구도 현행 300석인 국회의석을 늘리자고 제안한 사람은 없었다. 여론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
또한 여야가 지난해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중앙선관위 산하의 독립기구로 둔 것은 정파적, 지역적 이해관계를 떠나 중립성을 보장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에 전적으로 맡기면 일이 진척될 리도 만무하다. 따라서 당초의 취지대로 선거구획정위에 일단 맡기는 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