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춘에서 유래한 '데이트'의 어원을 아시나요?

[신간] '데이트의 탄생'…사랑은 '교감'이지만, 현실은 '교환'

자료사진(사진=이미지비트 제공)
'데이트'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연상되는가? 설렘, 낭만, 청춘…. 젊은이들이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해 가는 과정은 이렇듯 삶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희망을 품은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데이트에 필수적으로 돈이 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둘이 함께 영화 한 편(달콤한 팝콘이 빠질 수 없다) 보고, 밥 한끼만 먹어도 5, 6만원이 드는 세상이다.

'돈 없으면 데이트도 못하는 세상'이라는 현실을 절감한 젊은이들은 극단적으로 연애를 포기하기도 한다. 삼포세대, 오포세대의 서막이다.

대략 100년의 역사를 지닌 데이트라는 연애제도에 대한 환상은 어떻게 자리잡게 된 것일까? 신간 '데이트의 탄생'(지은이 베스 L. 베일리·펴낸곳 앨피)이 그 물음에 답해 준다. 이 책의 부제로 쓰인 '자본주의적 연애제도'라는 표현은 결정적인 길잡이다.

'데이트에서 돈이 핵심이라는 점은 연애 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함의를 가진다. 돈의 문제는 남자를 주인으로 만들고 연애의 통제권과 주도권을 남자에게 넘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데이트를 경제적 비유를 통해서 가장 잘 이해되는 교환제도 또는 경제적 시스템 그 자체로 보게끔 만들었다. (중략) 남자가 여봐란듯이 공공장소에서 여성에게 돈을 쓴다면, 이는 분명 경제적인 행위로 보일 것이다.' (59쪽)

이 책은 1920년대부터 1965년 사이 미국에서 확산된 데이트제도에 관한 연구서다. 이 시기 산업 자본주의의 선봉에 있던 미국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를 견인하며 데이트제도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데이트에 대한 이상과 현실이 어긋나 버렸다는 점에서 이 연구서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지은이가 데이트의 어원을 매매춘에서 찾은 것은 현실의 데이트가 '교감'보다는 '교환'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데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사실 데이트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될 무렵에는 매매춘의 직접적·경제적 교환을 의미했다. (중략) 데이트제도에서는 돈이 단지 가벼운 만남이라도 하나의 상징적 교환 양식으로서 남녀관계에 직접 개입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매춘과 마찬가지로, 데이트는 돈을 매개로 여성과의 교제를 추구한다.' (59, 60쪽)

남성 중심으로 꾸려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내기로 합의됐고, 상대는 그 대가로 성적 호의를 제공하게 됐다는 말이다. 남성은 관계에서 우월한 권력을, 여성은 경제적 실리를 취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데이트가 경제학적 용어로 평가되면서, 남자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제공하는 데이트의 질로 평가받게 되었다. 데이트 시스템의 핵심은 돈이었고, 당시 데이트의 공적 관습들은 남자를 지갑으로 환원시켰다. 남자에게 가슴 크기로 여자를 판단하라고 부추기듯, 여자에게는 지갑 두께로 남자를 판단하라고 부추겼다.' (147쪽)


◇ 우리의 연애와 데이트를 규정짓는 실체는 무엇일까?

데이트의 탄생ㅣ베스 L. 베일리ㅣ앨피
'여자가 먼저 데이트를 신청하면 안 된다' '남자가 주로 비용을 대야 한다'는 식의 데이트 에티켓의 유래를 찾는 과정도 흥미롭다.

이 책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문화적·역사적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가변적 행동양식이라는 '젠더' 개념에 대한 반발로 데이트 에티켓이 강화됐다고 설명한다.

'여성적인 여자는 의존적이고 순종적이고 세심하며 가정에 충실하다. 그러나 이 같은 관념은 남성과 여성의 영역이 서로 겹쳐지는 변화된 사회 현실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젠더의 영역을 모호하게 만드는 바로 그 현실 때문에 거꾸로 미국 사회는 남성적·여성적 행동 방식, 즉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차이를 증명하고 강화하는 행동 방식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남녀관계에 관련된 에티켓, 특히나 젊은이들의 연애에서 이러한 강박관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221쪽)

지은이는 '우리 시대의 연애'라는 에필로그를 통해 데이트 시스템으로 나타난 연애의 경제학 메타포(은유)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이전 세대들이 경험한 문제들이 아직도 남아 있고, 사랑의 행위와 드라마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그 맥락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 변화의 핵심으로 '성혁명'을 꼽는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성보다는 혁명이다. 20세기 초에 연애가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경제 메타포가 가정과 가족의 메타포를 대체했듯이, 1960년대에는 혁명(물론 성의 혁명)의 메타포가 경제를 대신했다.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혁명은 침실에서나 거리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변화의 기운이 감돌았고 권력투쟁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297쪽)

이러한 권력투쟁은 세대, 계급, 인종뿐 아니라 남녀 사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론이다.

'남성과 여성의 투쟁, 성과 젠더의 의미에 대한 투쟁은 경제·가정·개인·정치 등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경계의 구분 없이 수많은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그 결과, 남성과 여성은 더 많은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다. 자유의 축복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시스템에는 착취의 가능성이 적지 않으며, 혁명으로 모든 이가 진정한 자유를 얻었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자유를 얻은 것은 확실하다. 물론 그에 따르는 위험, 책임, 쾌락 문제도 아울러 짊어져야 한다.' (297, 298쪽)

지은이는 '불확실한 세계가 두렵고 공포스럽지만, 우리는 혁명까지 우리 것으로 만들었고 그 혁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여전히 연애의 경제학 메타포로서 데이트 개념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일침이다. 알면 보이는 법이다. 우리의 연애와 데이트를 규정짓고 조종하려는 것의 실체를 엿볼 수 있도록 돕는 이 책의 가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