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명절 풍속도는 핵가족 시대와 도시화로 급변했습니다. 불과 3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 1960~70년대 추석 명절은 나라 전체가 떠들썩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는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귀향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고향으로 달려가는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타지이자 각박한 도시에 살면서 잃어버렸던 유년의 꿈과 낭만, 뒷동산과 실개천을 찾아가는 '행복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추석 명절은 정과 인심이 넘쳐나고, 만남과 이별의 스토리텔링이 완벽했던 '회귀의 대서사시'였습니다.
시대가 변천하면서 추석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언제라도 고향집을 다녀올 수도 있고, 스마트 폰으로 실시간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전송할 수 있다 보니 고향집 부모님이 손자 크는 것을 안방에서 보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제 추석 명절을 손꼽아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 친인척, 고향 선후배들과의 '상봉' 의미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단지 '추석'이기 때문에 관습처럼 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국토교통부가 9월 초 발표한 '지난 10년 간 귀성객 통행 실태조사' 결과, 고향에서의 체류기간이 당일이나 1박 2일인 경우는 늘어난 반면, 3박 4일을 고향에서 머무는 경우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석연휴에 고향에 가는 대신 여행을 계획하는 가구도 10년 전보다 무려 세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추석'의 의미가 퇴색하다 못해 점차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50년 이후 태어날 신세대들에게 '추석'이라는 낱말이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닌 채 백과사전 속 단어로 숨어버릴지 모릅니다. 그 때쯤이면 아이들의 DNA에서 '아름다운 추석 명절 인자'가 희미해지거나 아예 삭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전과 이후의 '달'이 다르듯, 우리사회가 농경 중심에서 도시산업 중심으로 바뀐 이후의 '추석' 풍습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수긍하고 받아들여야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추석' 이라는 전통과 향수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핵가족화와 도시화가 정착된 현대사회에 맞는 '추석'으로 사회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추석'이 사라지기야 하겠느냐며 마음 놓을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가 지나가면 다음 세대가 알아서 '추석'의 바통을 이어가리라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우리나라 5천년 역사만 보아도, 사라졌거나 이름만 남아 있는 명절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지금대로라면 점점 '킬링 추석'으로 빠져들 위험성이 큽니다. 추석 명절이 고통스럽고, 고달프고, 가족끼리 불화하고, 모두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면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우리 후손들 세대에 가서는 폐기 처분될지도 모릅니다.
추석 명절을 휴식과 재충전 그리고 사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힐링 추석'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행복한 추석'을 만드는 것이요. 강원도 산골마을 입구에 붙었다는 현수막이 '힐링 추석'의 정답 같습니다. "에미야 어서 와라.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주마"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에는 나 자신을 내려놓는 '힐링 추석'을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