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반기문, '대망론' 인가…'신기루' 인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윤성호 기자)
여권 내부에 '반기문 대망론'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여야를 통틀어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반 총장을 챙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반기문 총장의 상승세가 이어질 기세다.

그도 그럴 것이 2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둘러싼 친박 진영의 경계와 사위의 마약 복역 봐주기 등의 문제로 직격탄을 맞아 10% 중반의 지지율로 떨어진 것이다.

이와 함께 추석 연휴기간 동안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의 부산 회동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라는 작품이 친박 진영으로부터 ‘졸작’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당내 분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도 김 대표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 하고 있는 셈이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의 대선 후보군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며 김무성 대표는 아니라고 언급한 것도 김무성 대표의 우월적 위상를 깎아내리는 데 일조했다.

야당의 유력 주자라는 문재인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10% 중반대 지지율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횡보를 거듭하고 있는 틈을 타 반기문 총장이 치고 올라온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반 총장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반 총장의 오름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유엔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올 유엔 방문 기간 동안 반 총장과 7차례나 자리를 함께 하는가 하면 25일엔 20분 동안의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반 총장과의 우의를 과시한 것이다. 반 총장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칭송으로 박 대통령의 심기를 기쁘게 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특정 정치인을 키워주고 싶으면 그가 주도하는 행사에 참석하거나 행사장 바로 옆 자리에 서도록 하는 등의 행보를 통해 ‘이 사람은 내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방식의 정치를 한다.

지난 2011년 말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진영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용산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에 참석해 진영 의원을 배려하는 장면을 연출했으며 지난 7일 대구 방문에서는 지역구 의원들을 배제한 자리에 청와대 비서관들을 대동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30%라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갖고 있는 정치인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정치적 행보다.

반기문 총장이 이런 박 대통령으로부터 후계자 중의 한 명으로 각인되는 기회를 가졌으니 여권과 고향 충청도에선 ‘혹시 반기문 아니야’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총선이 임박하면 충청 지역 새누리당 출마자들은 반기문 대망론을 선거전에 활용할 공산마저 크다.

충청권 의원들은 총선 이후 반기문 대망론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있는 포럼 같은 결사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 친박계의 지원을 등에 업으면 활화산이 될 개연성도 있다.


그럴지라도 반 총장이 새누리당의 대권 후보가 되는 과정은 지난하다.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2016년 말(10년)로 끝나지만 1여년을 남겨둔 유엔 수장으로서의 공적은 거의 없다.

다시 화약고 역할을 하고 있는 중동의 IS 문제와 시리아의 이라크 사태, 난민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반 총장은 뚜렷한 공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남북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유엔 사무총장에 발탁됐으나 한 일이 없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개성공단조차 방문하지 못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보수 정권과 미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독자적인 대북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사진=윤성호 기자)
그 바람에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한 번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전임자인 코피 아난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에겐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적 기반이 없다.

충청권 의원들과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그의 대권가도를 위한 전진기지를 자처한다 손치더라도 새누리당의 대세를 움직일지 여부는 미지수다.

반기문 총장에겐 결단력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고 할지라도 충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을 했든, 총칼로 쿠데타를 했든, 민주화운동을 했든 결단력과 용기가 없는 정치 지도자가 권력을 잡은 예는 우리 현대사에 없다.

반 총장은 임명직 외교관 출신으로서 만들어준 자리에 익숙했지 자신의 힘으로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다.

유엔 사무총장도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시아 균형자 외교의 덕을 본 것이다. 사실 새정치연합 내 친노 인사들은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될 당시의 비화와 지원 내역을 잘 알고 있다. 이런저런 소문이 있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영남 출신이 아니거나 영남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한 적이 없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모두 TK(대구·경북) 출신들이었고 이회창 후보는 TK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지금은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반기문 대망론을 마지못해 수용한다고 할지라도 내년 총선 이후부터는 공세를 펼 것이고 정치적 맷집이 없는 반 총장이 견딜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그립’(장악력)이 지금 같지 않고 조금이라도 약화될 경우 비박계의 반기문 무너뜨리기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실제로 국내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새누리당 출신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상득 의원이라는 친 형과 이재오 의원이라는 중진 의원들이 새누리당 내에 버티고 있었기에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현재로선 반기문 총장의 그림자가 커 보인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을 마치고 막상 한국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김황식 전 총리나 정운찬 전 총리의 경우와 비슷한 전철을 되밟지 말란 법이 없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내 차기 잠룡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반기문 총장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2017~2018년을 관통하는 시대적 화두가 남북관계와 외교가 될 것인지, 아니면 경제 문제와 국가·국민 통합이 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혹시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내년 총선 이후 분권형 개헌을 해 외교·안보·국방을 책임지는 국가 수반 자리라면 모를까, ‘내치’를 겸한 현재와 동일한 절대 권력의 대통령이라면 아닐 수도 있다. 거저 얻을 수도 줄 수도 없는 것이 권력이다.

따라서 자칫 정치권의 ‘신기루’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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