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밥줄' 쥐고 예술인 길들이는 나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그래픽=노컷뉴스)
대한민국 예술계에 ‘검열’ 이라는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예술작품을 ‘검열’하겠다는 발상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블랙리스트’다. 예술가의 정치 이념이나 작품의 성향이 정부가 추진 중인 문화융성과 다르거나 정치적으로 반대쪽에 서 있는 작가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군부독재 시절이었던 1970~80년대에는 검찰이나 중앙정보부가 직접 나서 진보·좌파적이거나 반정부적인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감시하고 억압했다. 무력을 동원한 압박이었다. 그후 독재가 종식되면서 ‘검열’이라는 망령은 사라졌다. 문화예술계에 봄이 온 것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현 정부가 시작되면서다. 진보·좌파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창작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최근 세월호를 기억하고 성찰하자는 취지의 퍼포먼스 <안산순례길>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공개됐다. 탈락 이유는 이렇다. 세월호와 관련돼 있고, 연출자 윤한솔이 정치적이라서 '위'에서 기피한다는 이유였다.

<안산순례길>은 ‘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가 세월호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성과 성찰의 퍼포먼스를 벌이자는 취지로 만든 예술창작이다. 참여하는 예술인들은 연출가와 배우, 극작가, 설치작가, 디자이너, 시인, 기획자 등 다양하다. 이들 출연진과 시민들이 갖가지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5시간 가까이 함께 길을 걷는 특정장소 공연이다.

안산순례길. (photo by HAKS)
이런 취지의 <안산순례길> 공연을 문화예술위원회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데도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킨 것은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 예술계의 입장이다. <안산순례길> 참여 예술인들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문화예술위원회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변절됐다’고 비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부 예술인들에 대한 창작지원금과 예산지원 중단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특정 예술인의 정치성향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화융성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지원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공공성에 위배되는 치졸한 행태이다.

예술은 무엇에든 구속당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구속하려는 정권과 집단은 도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불행했다. 예술 활동은 자유롭게 권장되어야 하고, 창작을 통해 시대상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은 세계 140개국 가운데 26위인 대한민국이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저급한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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