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교육문화분야 업무보고에서 한국사 교과서의 이념편향을 시정할 것을 지시한 뒤 여권과 교육부가 국정화 방안 등 제도 개선책 마련에 드라이브를 걸어왔는데도 청와대는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서인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는 교육부 소관이라는 청와대의 입장과 달리 황우여 교육 부총리가 다음 주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화와 검정강화, 두 가지 방안의 장단점을 보고한 뒤 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확정안을 발표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교육문화 분야 관계자들은 현재 한결같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여부는 교육부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등 중등학교 교과용 도서 구분안의 경우 교육부 장관이 의견수렴을 거쳐 국정화 여부를 결정한 뒤 고시하면 된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여부에 대한 결정과 이에 따른 행정 예고는 교육부 장관의 직무에 해당하는 것으로, 청와대에서 언급할 것이 없고, 별도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설명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를 교육부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며 발을 빼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결정되면 정치권은 물론 역사학계와 교육현장에서의 치열한 이념 공방 등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되는 만큼, 청와대가 이런 논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관측된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개선 작업이 당초 박근혜 대통령의 공개적인 우려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마치 교육부 뒤로 숨는 것과 같은 모습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체제 강화이든 국정화이든, 아니면 두 방안의 동시 추진이든, 교육부가 현재 각계 여론 수렴을 거쳐 준비하고 있는 개선책은 바로 박 대통령의 우려와 개선 지시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13일 교육문화 분야 업무보고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주는 게 중요한데, 정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사실오류와 이념편향 논란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교육부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 이후 지금까지 "청와대의 최종 입장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것이 청와대 또 다른 관계자의 얘기이다.
특히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는 교육부 소관'이라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이 무색하게도 황우여 부총리는 다음 주초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화와 검정강화 두 가지 방안의 장단점을 보고한 뒤 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방침으로 전해졌다.
장관 고시 변경 사안은 국무회의 의결이나 상부의 재가가 필요없는데도 대통령의 재가 절차를 거치는 셈이다.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정통한 여권의 한 관계자는 "황 부총리가 보고를 하면 대통령은 정무적인 판단을 할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의 생각이 황 부총리의 생각과 일치하면 재가를 하고 다르다면 재검토 지시가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 가지 방안 중 검정 강화로 갈 경우 우파 역사학자들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길 꺼리고 있고, (검정 강화에 따라) 교육부가 사실과 다르게 기술한 출판사에 시정명령을 내려도 재판까지 가야돼 장시간 사회가 분열되는 등 부작용이 있다"며 국정화로 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의 재가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은 ‘교육부 장관 고시 변경 사안’이어서 청와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청와대의 입장과 달리 그동안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해 왔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