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노벨문학상 수상자…소설가도 시인도 아니었다

벨라루스 출신 언론인 알렉시예비치…"리얼리티는 자석처럼 나를 매료시켰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사진=문학동네 제공)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었다. 베랄루스 출신 언론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가 그 주인공이다. 언론인이 노벨문학상을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여성으로서는 14번째다.

알렉시예비치는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자기만의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작가 자신은 이를 '소설-코러스' 장르라고 부른다. 여러 해에 걸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문답 형식이 아니라, 소설처럼 읽히는 논픽션으로 쓰는 까닭이다.

1985년 첫 출간된 알렉시예비치의 처녀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펴낸곳 문학동네)는 그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 200여 명을 인터뷰한 방대한 기록이다.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았던, 혹은 병원에서 일했던 참전 여성들은 베테랑 남성 군인들이 늘어놓는 전쟁 영웅담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돼 온 특별한 이야기를 전한다.

"학교를 마쳤는데 나더러 육지에 남으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기로 했지. 마침 내 성이 '루덴코'로, 우크라이나 성이어서 그 작전이 먹혀들었어. 그래도 결국 한 번은 내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지만. 갑판을 열심히 닦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럽더라고. 뒤를 돌아보았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배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와 있고, 그 고양이를 해병이 쫓고 있었어. 최초의 항해자들한테서 유래된 건지 뭔지 몰라도, 해병들 사이에는 고양이와 여자는 바다에 재앙을 가져온다는 속설이 있었어. 고양이는 배를 떠나고 싶지 않은지 계속 잡힐 듯 말 듯 요리조리 잘도 도망 다녔어. (중략) 그런데 고양이가 미끄러지며 바다에 빠지려고 하는 거야. 그 순간 내가 기겁을 하며 '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리지 않았겠어. 비명소리가 어찌나 높고 날카로웠던지 여자 목소리라는 게 단박에 드러났지. 삽시간에 배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어. 정적이 흘렀지." (361쪽)


이 책 속 참전 여성들은 배고픔, 성폭력 등 전쟁의 추하고 냉혹한 맨얼굴을 고발한다. 그들은 전장에서도 사람을 보고, 일상을 느끼고, 평범한 것에 주목한다. 그 눈에 비친 전사자들은 모두 젊거나 어린 병사들이었다. 아군인 러시아 병사도, 적군인 독일 병사도 가엾기는 매한가지였다.

◇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고백, 그리고 증언…내가 세상을 듣고 보는 방식"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ㅣ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ㅣ문학동네
전쟁이 끝났지만 여자들에게는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예쁘게 미소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자들은 전우였던 여자들을 잊거나 배신했다. 함께 거둔 승리까지 독차지했다. 그렇게 여자들의 전쟁은 잊혔다.

"결혼을 빨리 했어. 1년 후에. 남편은 같은 공장의 엔지니어였어. 나는 사랑을 꿈꿨어. 집과 가족을 원했지. 집안에서 어린아이들 냄새가 나길 바랐어. 첫아이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냄새를 얼마나 맡았는지 몰라. 아무리 맡아도 싫증이 안 나더라고. 그건 행복의 냄새였으니까…… 여자의 행복……전선에서는 여자의 냄새가 없었어. 전부 남자들이었으니까. 전쟁은 남자 냄새가 나." (429, 430쪽)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의 집필을 1983년에 마쳤다. 원고는 출판사에 넘겼지만, 2년간 출간되지 못했다.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탓이다. 하지만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1985년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20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이후 범죄적이고 폭력적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를 담은 '아연 소년들'(1989),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죽음에 매료되다'(1993),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폐허에서 핵전쟁 이후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다룬 '체르노빌의 기도: 미래의 연대기'(1997), 사회주의 붕괴 뒤 사람들의 상실감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적응기를 기록한 '세컨드 핸드타임'(2013) 등의 후속작을 통해 신화처럼 떠받들어지던 체제와 전쟁의 맨얼굴을 들춰냈다.

알렉시예비치는 "나는 늘 각각의 인간에게 인간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개인 안의 그런 인간성을 내가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가 '목소리 소설'이라는 자기만의 장르를 발견할 수 있던 힘도 이러한 목표에 있었으리라. 알렉시예비치가 한 인터뷰에서 전한 말은 그 단적인 증거로 다가온다.

"나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찾고 있었다. 리얼리티는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매료시켰고, 나를 고문했고, 내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그것을 종이 위에 포착하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고백, 증언·증거와 문서를 사용하는 장르를 사용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듣고 보는 방식이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인 합창, 매일의 세부사항이 만드는 콜라주인 셈이다. 나의 눈과 귀는 이렇게 기능한다. 이 방식 안에서 나의 모든 정신적, 감정적 잠재력이 정점에 오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방식 안에서 나는 동시에 작가이자 기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설교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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