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로 가는 전세난, 극약처방 필요할까?

[전세난 기획③] 백약이 무효인가

최근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전세가격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집없는 서민들의 고통과 설움은 클 수 밖에 없다. 전세난의 실태를 살펴보고 현 시점에서 필요한 대책은 무엇인지 4차례로 나눠 집중 조명한다.

글 싣는 순서
1. 미친 전세가격, 정부 책임 없나
2. 전세시대 막을 내리나
3. 백약이 무효인가
4. 월세시대 도래…대비는?


(사진=자료사진)
전세가격 폭등으로 전세 세입자들의 고통은 매우 심하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서너가지다.

울며 겨자먹기로 빚내서 집을 사거나 아니면 주인 요구대로 전세금을 올려주거나 일부를 월세로 돌려 반월세나 준전세로 갈 수도 있다. 이런 방법은 모아놓은 돈이 있거나 빚을 감당할만한 소득이 있을 때 가능하다.

형편이 안되는 전세 세입자는 살던 지역에서 쫓겨나 전세값이 싼 변두리로 쫓겨가야 한다. 이것은 350만에 이르는 모든 전세 세입가구(국토교통부의 2014년도 주거실태조사, 352만가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시장 프레임이 바뀌고 있어…백약이 무효”

문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처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임대주택공급, 특히 저소득 서민층을 위해 부족한 공공임대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주택은 공장에서 바로 찍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확충을 서둘러야겠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전세난을 위한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제가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월세화로 인한 임대차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기조 아래서 과거처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많아서 전세물량은 점차 줄어들게 되는 반면 전세수요는 여전해 전세가격은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지금은 시장의 프레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백약이 무효”라고까지 말한다.

그럼에도 전세대란으로 인해 집없는 서민들에게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은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대책 마련과 관련해서는 월세화가 임대차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큰 흐름이라고 한다면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차원에서 강구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자칫 흐름을 거슬러 전세를 다시 살리고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월세화가 급격히 이뤄질 경우 그 충격이 크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해 늦추도록 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임대료 상한제 : “부작용 크다” vs “극약처방 필요”

전세난에 대한 대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임대료에 상한을 둬 가격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물건가격이 급등했을 때 가격을 강제로 규제하는 방안은 문제 해결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금까지 많은 가격통제의 결과를 보면 공급자의 가격을 통제하면 공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에 가깝다. 전세난도 왜 생겼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인위적인 처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공급자가 전세 공급하는 것이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전세를 공급하지 않는 것이다. 전세를 공급하지 않아서 전세난이 생긴 것인데 가격을 통제하면 공급이 더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임대료 상한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도입해도 시장에서 작동할지 의문이다. 전월세 시장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전세가격 상한을 두면 임대인은 전세금을 돌려주고 월세 비중을 높이는 선택을 하게 해서 월세화를 가속화시키게 된다. 임대료 상한제를 실시하면 여러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도 “임대료 상한제가 이론적으로는 그럴싸한 아이디어지만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집주인 자신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세입자는 나가야 된다. 임대료 상한제를 실시해도 전세가 싸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에서 가격규제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것이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지금은 집주인이 부르는 대로 전세값을 정할 수 있다. 임대료 상한제가 없다면 전세가격이 오르는 것에 대한 대책이 없다. 정부는 세입자와 집주인 양쪽을 다 봐야 하지만 약자인 임차인 입장을 더 감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가격을 규제하면 오히려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급한 상황에서 당장은 극약 처방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은 임대료 상한제로 상승률에 캡을 씌우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임차인에게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임대료 상한제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우리나라 주택 임대차시장이 갖고 있는 복잡한 구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세가 있고 보증부 월세(준전세, 반전세, 준월세), 월세 등 종류가 많다.

※보증부월세 : 세입자가 보증금과 함께 매달 임대료를 내는 것을 말한다. 월 임대료가 없는 ‘순수 전세’와 보증금이 없는 ‘순수 월세’ 사이에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보증금이 전세가격의 60%를 넘으면 준전세(‘반전세’), 10~60% 사이면 준월세, 10% 이하면 월세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느 한쪽에 대해 가격통제에 들어가면 마치 풍선의 한쪽을 누를 때처럼 다른 쪽을 부풀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가격통제를 안하는 것만 못하고 세입자들의 고통이 더 커지는 상황으로 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극약 처방으로 가격통제를 꼭 실시해야 한다면 한시적으로만 적용하고 임대료 전반에 대해 동시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월세 전환율 낮추고 적용범위 확대해야

전월세 전환율을 낮추는 것도 전세난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월세 전환율 : 주택임대차보호법 상의 ‘월차임 전환시 산정률’로, 전세의 일부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비율이다. 전환되는 전세금에 이 비율을 곱하면 월세가 산출된다. 법에 따르면 그 비율은 한국은행 기준금리의 4배나 10% 가운데 낮은 것으로 한다고 돼있다. 현행 기준금리가 1.5%이기 때문에 법상 전월세 전환율은 6%인 셈이다.

정부도 6%에서 5%로 낮추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법상 전월세 전환율은 계약기간 내에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가구에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에 한계가 있다.

법상 전월세 전환율은 계약기간이 끝난 뒤 재계약하는 주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1993.12.7 판례)다.

실제로 법상 전월세 전환율이 6%이지만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지난 8월의 전국 주택의 전월세 전환율은 7.3%로 훨씬 높은 실정이다. 전월세 전환율이 전세난 대책으로 효력을 가지려면 계약기간이 끝난 뒤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도 적용될 수 있도록 먼저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월세 전환율을 낮추면서 적용범위가 확대된다면 전세난을 완화시키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교수는 “전세가 비싸지면 일정 부분 월세로 갈 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 월세로 전환되는 전환율을 어느 정도로 가져 갈거냐가 중요하다. 전환율을 낮추게 되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일부만 월세로 가니까 갑자기 주거비가 뛰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영 교수는 “전환율을 낮추는 방법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기준을 제시해서 낮출 수도 있지만 좀더 적극적으로는 기업형 임대하는 회사들이 낮은 전환율을 제시해서 선도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한 기업형 임대 회사가 전환율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도 전환율을 3%로 적용해 입주자를 모집한 것이 하나의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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