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化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를 계기로 국론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가 격돌하고 있고 학계는 교수들의 집필거부 선언으로 들썩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현수막 게시와 신문광고 게재와 같은 대대적인 홍보전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 12일 정부의 국정화 추진 발표를 전후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현수막 게시다.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 홍보차원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15일 뒤늦게 철거했다. 이른바 주체사상 현수막 공세다.

이런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을 거리에 내건 의도는 아마도 현행 검정교과서가 불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국정화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행 검정교과서의 내용을 교육과정에 명시하고, 또 제대로 기술했는지 검정한 주체는 바로 교육부다. 현정부가 통과시킨 교과서를 트집잡는 것은 모순이자 자가당착이다.

현행 어떤 검정 교과서도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한 책은 없다. 새누리당이 좌편향 논란을 제기했던 금성사 교과서도 "주체사상이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과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썼다.

또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교과서도 주체사상의 3대원칙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고 심지어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도 홈페이지에서 주체사상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비판을 하기 위한 내용 소개에 색깔론을 덧씌우려 한 것으로, 이는 명백한 거짓선전인 셈이다.


다음은 교과서 명칭이다. 정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교과서의 명칭을 '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확정, 발표했다.

'눈부신 대한민국'을 '나쁜 대한민국'으로 획일화시킨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잡겠다는 게 정부·여당의 의도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정교과서 발자취를 돌이켜 볼 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때의 국정교과서는 모두 '올바른 역사교육'을 강조했다. 하나같이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올바른'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잘못된 의도가 개입하면 사관(史觀)을 주입할 수 있다. 올바름을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면 일종의 폭력에 해당한다.

새누리당 산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지난 2013년 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과 해법>이라는 정책보고서에서 "국정제는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국정제 전환은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냈다.

이때 당시의 새누리당 대표는 바로 현 황우여 교육부장관이다. 집권여당이 불과 2년 만에 손바닥을 뒤집듯 입장을 바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출국에 앞서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기보다는 올바른 역사교육 정상화를 이뤄서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국정화 발표전 대부분의 언론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정화에 부정적이었고 국정화를 강행할 경우 국론분열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으나, 박 대통령이 불을 지른 뒤 싸우지 말라며 일종의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1년여 만에 국정교과서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교육부의 약속이다.

그러나 집필진 거부사태가 이어지고 있어 집필참여자의 편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 촉박한 시간제약 속에서 과연 올바르고 균형있는 교과서가 가능할까? 대단히 우려스런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주체사상 문구의 현수막을 하루이틀만에 철거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경제민주화 공약 만큼이나 새누리당이 얕은 정치적 구호에 의존해왔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교과서 문제가 제자리를 찾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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