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원씩 들여 개발한 교과서를 미처 예상 수익에 달하기도 전에 폐기해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다음 달부터 국정교과서의 집필이 시작되면, 현재 중·고등학교에 역사 교과서를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 대부분은 당장 해당 사업 영역을 정리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일부 출판사에게 편집과 디자인 등 발행 과정을 맡긴다 하더라도, 이 과정에는 입찰에 성공한 극소수의 업체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수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현재 전국의 2천여 개 고등학교 중 100여 개교에 한국사 교과서를 배포하고 있는 '리베르스쿨'이 업계에 뛰어든 건 지난 2012년. 교과서 개발에 모두 5억여 원을 들였다.
업체는 관행대로 5년쯤 뒤에 재검정 심사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지난해 출시된 이 교과서는 3년 만에 인쇄를 멈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정부 방침대로라면 2017년 3월부터 국정교과서가 활용되기 때문이다.
리베르스쿨 관계자는 "정부를 믿고 투자했다가 손실이 수억 원에 달하는 등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며 "이렇게 시시각각 교과서 정책이 바뀌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패닉' 혹은 '함구'하는 출판사들…속내는?
국정화 절차가 예상보다 훨씬 숨가쁘게 돌아가면서, 일부 출판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현행 검·인정 체제에서 상당한 채택률을 보이는 A업체 관계자는 "멍한 상태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논의 자체도 진행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B업체 관계자는 "국정 교과서 체제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 상황파악이 덜 됐다"면서도 "출판사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면 검·인정교과서협회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지학사, 금성출판사 등은 "이후 단계를 지켜보겠다"며 즉답을 꺼리고 있다.
업체 입장에선 일단 교육부 눈밖에 나면, 검·인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과목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는 데 결코 유리할 리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국정 체제 아래의 역사교과서 발행업체로 입찰에 참여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논란'의 교학사, 특유의 담담함
한편, 지난 2013년 역사 교과서 편향 논란의 중심에 섰던 교학사 측은 담담한 분위기다.
현재 전국에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곳은 서울디지텍고 단 1개교뿐.
따라서 현재도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정 전환 뒤에도 추가적인 타격은 미미할 것이라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교학사 관계자는 "저희 입장에서는 (국정화가) 크게 좋아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