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세정의’ 없는 나라…이러다 망한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OECD 국가들 중 대한민국처럼 탈세를 밥 먹듯이 하는 선진국은 별로 없다. 한국만큼 이런저런 이유로 세금을 면제해주는 나라도 드물다. ‘면세’ 또는 ‘탈세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금을 제대로 걷어 잘 쓰는 것이야말로 국가를 지탱하는 근본임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조세정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역대 정권과 정치권이 늘 그랬다. 박근혜 정부와 19대 국회의원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세금은 수혜자 부담 원칙이 일차로 적용돼야 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면세 대상자가 너무 많다. 지난해 근로자의 절반가량인 48.2%(777만 명)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비정상적 구조다.

33.2%(2012년)→ 32.4%(2013년)→ 48.2%(2014년)로 매년 높아져 1년 전에 비해 15.8%포인트 상승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올 초에 불거진 연말정산 파동을 수습하느라 내놓은 보완대책에 기인한다.

명분은 저소득층과 서민층의 세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였으나 실제로는 근로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표를 계산하느라 근로소득세를 대폭 낮춰준 것이다.

오죽했으면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인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이 최저 임금이 넘는 근로자들은 소액이라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급여가 최저임금(1300만원) 수준을 넘는 근로소득자의 경우 매월 1만원씩 12만원의 세금을 내도록 하거나 총급여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14년 귀속 근로소득 연말정산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연소득 2000만원~3000만원 구간은 소득이 증가하면서 면세자 비중이 오히려 커지는 모습을 보인다.

‘최저한도세’(감면을 받더라도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라도 내야 한다는 김상조 교수의 논리를 적용하면 근로자 면세자가 777만 명에서 4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서민 증세냐는 비판론을 의식한 정부도, 정치권도, 진보든, 보수 진영이든 어느 누구도 제기하지 않는 근로자 면세자를 축소해야 한다는 논리다. 부자 증세만으로는 복지 재원이 부족한 만큼 서민 증세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자 증세의 설득력을 위해서도 서민 증세를 병행하여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소득이 낮은 근로자도 일정 소득수준을 넘는다면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세부담을 지우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병두 새정치연합 의원도 “근로소득자 누구나 매월 1만원 이상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라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와 보수를 떠나 귀담아 들을 필요성이 있다. 지난 3년 동안 세수부족액은 22조원에 이르며 국가 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탈세의 온상으로 꼽히는 부가세 간이과세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마련된 제도였지만 ‘짝퉁’ 영세업자들이 급증하면서 탈세를 부추기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 한국 세무사협회는 ‘짝퉁’ 영세업자가 35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간이과세 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오불관언’이다. 간이과세 대상자들의 표가 정부와 정치인들을 움츠려들게 만들고 있다. 이 바람에 세금 사각지대가 된 간이과세 대상자들의 탈세에 대한 대책은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단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두 번째, 세금은 '능력에 따른 조세 분담 원칙'이다. 모든 국민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조세 분담에 참여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느냐 적게 버느냐에 따라 다른 액수의 세금을 내는 것이 정의롭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나라들이 이 원칙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만 부자들에 대한 세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많지 않다. 근로자 과세 표준이 1억 5천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층부터 상승률이 급격히 둔화된다. 현행 최고 세율 38%보다 높은 세율을 신설(최고 세율 구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그래서 힘을 받는다. 세율 구간을 1억 5천, 2억, 2억 5천, 3억, 4억, 5억 이상으로 현재보다 더 세분화하여 높은 세율을 매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복지정책을 거론할 때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수준을 예로 든다.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최고의 복지국가들은 소득의 50% 안팎을 세금으로 낸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했다간 폭동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부자 증세는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법인세 인상도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정상화할 필요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기업들의 세금을 낮춰줬다고 일자리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국내 투자가 증가한 것도 아니다. 기업들의 사내유보금만 팽창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최대 경제위기였던 지난 1997년 IMF외환위기 사태 이후 기업들의 금고는 차곡차곡 더 쌓여가는 반면에 가계소득은 크게 감소했다. 경제의 3주체 가운데 정부와 개인들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가는 데, 기업들의 금고는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이미 1130조원대를 돌파했고 내년 중반기쯤 1200조원에 육박한다. 대기업들의 부채 비율은 100%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갖은 이유를 대며 거부하고 있다.

더욱이 임대업자들의 세금을 더 올려야 한다. 목 좋은 상가 한두 개만 갖고 있으면 놀면서도 부유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임대료가 원인이다. 통제가 되지 않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잡기 위해서라도 임대업자들에 대한 조세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들의 눈치를 본다. 이해관계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다.

임대업자들의 더 큰 문제는 탈세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대료를 낮춰 계약을 맺는 이른바 다운임대계약이 횡행하고 있다. “이들의 탈세만 잡아내도 연간 1~2조원의 세수를 더 걷을 것”이라는 한 세무관계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로자들의 ‘최저한도세’ 도입을 위해서라도 고소득층의 소득세와 기업(특히 대기업)들의 법인세를 먼저 인상해야 한다. 조세 정의는 바로 여기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조세 정의는 요원한 듯하다. 왜냐하면 정부도 그런 의지가 빈약하고 정치권은 납세자인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면서 ‘짬짜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도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대충 얼버무린 채 끝날 공산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정치권은 이미 비과세·감면 일몰을 연장하는 법안들을 잇따라 발의했다. 기획재정부도 마지못한 척 정치권과 궁짝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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