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와 허세…스크린에 비친 뿌리 잃은 중국인의 파국

[백 투 더 BIFF ③] 지아장커·허우샤오시엔…中 거장 감독들의 귀환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성인식이었다. 혹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성공적으로 자존심을 지켜냈다. 폐막식 이후 일주일 넘게 흐른 지금, 뜨거웠던 열기는 식었지만 과정이 어려웠던만큼 영화제의 족적은 더욱 뜻깊게 남았다. 파격적인 시작을 알린 제1회부터 아픔을 겪고 성숙해진 현재까지. CBS노컷뉴스는 이명희 영화 평론가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되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공든 탑이 무너지랴…스무 살 BIFF의 어제와 오늘
② 휴머니즘 외면 않은 용기…'난민문제'를 품다 <상>
② 휴머니즘 외면 않은 용기…'난민문제'를 품다 <하>
③ 빈부격차와 허세…스크린에 비친 뿌리 잃은 중국인의 파국
(계속)

영화 '산하고인' 스틸컷(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0회를 맞아 부산국제영화제는 회고상영을 주제로 두 개의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아시아 영화예술을 대표한 '아시아 영화 100'의 10편과 '내가 사랑한 프랑스 영화'라는 타이틀로 소개된 10편이 그 면면이다.

영화의 역사가 검증한 걸작인 회고상영 영화들의 감독 가운데, 갈라 프리젠테이션 섹션에 신작을 내놓은 감독들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갈라 프리젠테이션 섹션은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집행위원장이 무대에서 직접 감독을 소개하는 예우를 갖췄다.


우선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아시아영화 100'을 통해 '비정성시'(1989)를, 갈라 섹션에서는 '자객 섭은낭'을 내놓았다.

호금전의 '협녀'(1971)를 계승한 듯, '자객 섭은낭'은 수채화 같은 분위기, 혹은 동양화적 풍경과 정중동의 미학을 극히 아름답게 보여줬다. 자객으로 키워졌지만, 마음속의 연인을 향한 섭은랑의 감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무협사극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아시아영화 100'의 '스틸 라이프'(2006)와 함께 새 영화 '산하고인'을 갈라 섹션에 소개했다. '산하고인'은 1999년과 2014년, 2025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직시하는 작품이다.

26년에 걸친 급격한 자본주의화와 세계화 탓에 개인과 가족이 파괴하는 과정을 통해 본 중국의 현대사회사이며 비관적인 미래의 예견이다.

여주인공 타오(자오 타오)는 두 남자 진솅, 리앙즈는 1999년 펜양에서 청춘기를 보낸다. 타오는 감정적으로는 리앙즈에 끌리지만, 돈 많은 진솅과 결혼한다. 2014년,

이혼한 타오는 아들 달러(부자되라고 지은 이름)와도 떨어진 채 홀로 사는 재력가다. 펜양에 돌아온, 죽어가는 리앙즈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이 잃어버린 인생임을 깨닫지만, 영어만 쓰는 글로벌 인재로 아들을 특수교육하는 진솅을 막지 못한다.

2025년 호주에 정착한 아버지와 아들은 소통하지 못한다. 2025년에 달러는 가치가 떨어진 돈의 이름이다. 즉 애초에 잘못 지어진 정체성 없는 이름인 셈이다. 조기유학으로 중국어를 잊어버려 호주에서 중국어학교를 다녀야 하고, 아버지와는 통역이 있어야 소통하는 세대다.

극중 2025년에 일어나는 일은 현재 세대의 자승자박인 것이다. 아무 의욕이 없는 달러는 통제도 되지 않으며 부모 세대가 만들어 놓은 피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중국어를 잊은 달러는 토론토 출신 연상의 중국어교사(실비아 창)에게 모성에 가까운 사랑을 느끼는데, 잃어버린 고향과 모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사랑이다.

유머와 아이러니, 비판적 시각으로 가득찬 영화의 처음과 끝을 울리는 음악 '고 웨스트(Go West)'가 인상적으로 쓰였다. 그 노래에 맞춰 춤추는 타오는 젊은 날이 회한스러운, 고독한 어머니다.

◇ "미래의 중국은 지아장커를 '중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감독'이라 부를 것"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컷(사진=부산영화제 제공)
'산하고인'은 지아장커 감독의 데뷔작 '소무'처럼 중국 펜양이 무대다. 물질만능주의에 쏠리고 내몰림 당하는 젊은이들의 풍자적이고 코믹한 에피소드 역시 '소무'의 분위기를 강하게 상기시킨다.

개발과 신기술의 도입에 따라 급격히 변화하는 어수선한 중국 펜양에서 시작하는 청춘의 초라한 초상속에 감독 자신이 보낸 청춘기가 있다고 한다.

청춘의 꿈과 사랑 대신 배금주의를 따라 도시로 쏠려간 사람들은 빈부격차와 허세 안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세계화 속에서 뿌리를 잃은 중국인이 겪게 될 파국을 영화는 예견한다.

돈과 성공을 동일시하고 물질만능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경쟁으로 뛰어들었던 세대는 인간의 문제, 감정의 문제에 무너진다. 천박함과 가족 해체는 치러야 할 대가다. 부모는 버림받고 자식은 고립되며, 모국어는 잊힌다.

이 영화로 자오 타오와 실비아 창은 타이완 금마장 여우주연상 공동후보에 올랐다.

브라질의 월터 살레스 감독이 만든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됐다. 지아장커 감독과 '소무' '스틸 라이프' 등이 만들어진 펜양으로 감독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여정이다.

월터 살레스의 영화 '중앙역'이 내륙의 황폐한 땅이자 브라질 영화의 성지이며 고향인 세르타웅을 찾아가는 여행이듯, 펜양은 어쩌면 미래에 중국영화의 성지가 될 것인가.

통제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잃지 않고, 중국에 대한 고민을 영화화했던 지아장커의 비관적인 영화들은 금지되기도 했으나, 미래의 중국은 지아장커가 중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감독이라 부를 것이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박해 받는 것이 법칙인가 보다. 이미 세계는 지아장커를 중국의 대표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편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동성애영화의 배급을 허가한 것이라는 소식이 돌았던 '로메르를 찾아서'는 결국 부산상영이 결렬됐다. 이 영화는 '안양의 고아' 이후 왕차오 감독 영화로는 부산영화제에서 유일하게 상영되지 못한 영화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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