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노예와 노예선 선장, 자유로의 항해를 떠나다

[노컷 리뷰]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영화 '프리덤' 스틸컷.
우리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흑인 노예도, 백인 선장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영화 '프리덤'은 이들이 육체적, 정신적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프리덤'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현재의 흑인 노예 사무엘 그리고 100년 전 과거의 존 뉴턴 선장. 사무엘은 가족과 함께 백인이 주인으로 있는 농장에서 탈출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존 뉴턴 선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도망 노예 가족과 남 부러울 것 없는 존 뉴턴 선장의 이야기는 절묘하게 겹쳐진다. 절망과 불신에 가득한 둘의 내면은 어딘가 닮아 있다.

노예처럼 학대 당한 기억을 갖고 있는 존 뉴턴 선장은 아프리카로 향하는 첫 노예선의 키를 잡게 된다. 오직 성공을 위해 떠난 그 항해에서 그는 어두운 시절 자신과 함께 생활했고, 여전히 노예인 흑인 오자이어스를 만난다.

배 안에 있는 흑인들은 사람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된다. 6~7개월 간의 항해에서 많은 흑인들이 병에 걸려 죽어 나가고, 살아 있는 흑인들 중 일부는 자유를 꿈꾸며 죽음을 원한다.


차갑게 얼어있던 존 뉴턴의 마음은 식음을 전폐한 흑인 남자 아이 그리고 과거 자신의 동료였던 흑인 노예 오자이어스와 교감하면서 서서히 바뀌어 나간다.

폭풍우를 만나 죽음의 위기에 놓였을 때도 그는 흑인 노예들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구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오자이어스를 형제로 인정하고, 그의 목에 걸린 쇠사슬을 풀어준다. '나도 인간이고 우리는 형제'라는 말은 존 뉴턴을 움직이고 인생을 뒤바꾼다.

영화 '프리덤' 스틸컷.
존 뉴턴의 순조롭지 못한 항해처럼 사무엘 가족 역시 자신들을 뒤쫓는 노예 사냥꾼들에게 몇 번이나 붙잡힐 위기를 겪는다.

그 때마다 비밀 조직 '지하철도'의 일원들은 목숨을 걸어 그들을 돕는다. 흑인도 섞여 있지만 조직원 대부분은 백인이다. 처음에 백인들을 믿지 않던 사무엘은 점점 그들의 따뜻한 연대 속에 마음을 연다.

그러나 또 다른 절망이 그를 찾아 오고, 괴로움에 빠진 사무엘은 다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무엘의 마음을 다시 연 것은 악명 높은 백인 노예 사냥꾼이다. 불필요한 살인을 하지 않는 그는 동료 사냥꾼에게서 사무엘 가족을 구하고 끝내 그들을 보내준다.

다시 존 뉴턴 선장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무사히 항구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약혼녀에게서 받은 성경책을 흑인 노예 소년에게 준다. 그 소년은 사무엘의 증조 할아버지다. 100년 전 소년이 간직했던 유일한 희망은 운명의 나침반을 따라 그의 증손자 사무엘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결국 수많은 절망을 이기는 것은 단 하나의 희망이다.

영화는 왜 흑인은 노예일 수밖에 없는지, 인간임에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에 대해 따져 묻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인간의 섣부른 이기심으로 인해 일어난 참사다.

다만 강인한 의지와 신념 그리고 희망만이 설명할 수 없는 모든 부조리를 삶에서 걷어낼 뿐이다. 사무엘 가족에게 그리고 후에 목사가 된 존 뉴턴에게 희망의 원천은 신앙이었다.

이 영화가 비기독교인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이 땅 위에서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고, 그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때로 역사는 한 사람이 바꾸기도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집단이 변화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흑인의 비극적 역사는 어느 순간 끝난 것이 아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통해 인간답게 살고자 했기에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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