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거리공연까지 동원하고 극한 아르바이트가 만년 직업이 되는 청춘들. 고학력에 외국어능력, 전문 자격증까지 소지해도 서류전형조차 통과할 수 없는 좁은 취업문. 그리고 끝내 범죄에까지 내몰리는 이땅의 신음하는 젊은이들을 CBS노컷뉴스가 3차례에 걸쳐 돌아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버스킹도 스펙쌓기가 되는 현실 ② '내장 튀고, 동상 걸리고…'극한알바' 신음하는 청년들 ③ 범죄에까지 내몰리는 가혹한 청춘들 - 보이스피싱 다단계 유사수신…전과자로 전락한 내 인생 |
범죄 피해자가 아닌 생계형 피의자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이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실이 됐다.
특히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형편이 넉넉지 못해 금전적 도움을 받기는 커녕 은퇴 시점에 몰린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이들의 경우 한숨만 더욱 깊어져갈 뿐이다.
이 중 일부는 아예 절도나 횡령, 금융사기 등 범죄에까지 빠지기도 한다. 개인적인 배경이나 동기가 범행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청년 빈곤 시대의 아픔과 과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 렌터카 손님에게 "없던 찌그러짐 생겼다"며 돈 뜯어내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던 박모(29)씨는 지난해 8월 한 렌터카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왼쪽 범퍼 아래에 없던 금이 생겼다"며 고객에게 덤터기를 씌워 주인 몰래 30만 원을 뜯어냈다.
5개월 동안 수도, 전기, 가스 등 40여만원의 공과금이 밀리는 바람에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할 수 있던 유일한 돌파구였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당시 박씨의 어머니는 돈벌이가 시원찮았고, 아버지도 이미 퇴직했기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는 정말 쉽지 않았던 상황.
박씨는 "잘못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당장 밥챙겨 먹을 돈도 없는데 학자금 대출 이자 연체 고지서까지 날아들어 정신을 못 차렸다"며 "나중에 취직하게 되면 직접 찾아가서 사과드리고 용서를 빌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당시 취업 이력서를 제출했던 17개 회사 중 한 군데만 붙었어도 이같은 극단적인 범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취직이 되지 않는 자신의 비운을 탓했다.
아직 직장을 얻지 못한 박씨는 현재 졸업까지 미루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을 앞둔 취업준비생 김모(32)씨는 지난해 3월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검색하다 한 구매대행사에서 영업관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발견했다.
월급 300만원에 일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주저 없이 이력서를 냈고, 금세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출근할 사무실이 없다는 점, 퀵서비스로 전달받은 카드에서 돈을 뽑아 다른 계좌로 이체하라는 게 상사인 '최 실장'의 첫 지시였다는 점은 어딘가 이상했다.
보이스피싱(전자금융사기) 피해자들의 애먼 돈을 중국에 있는 조직에 전달하는 전형적인 '인출책'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
여러 차례 같은 일을 반복하던 김씨는 자신이 하는 일이 불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예비 신부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일을 계속 했다.
◇ 노모와 동생 남겨두고 결국 '쇠고랑'
김씨가 같은 해 5월 보이스피싱 중간책 최 실장의 지시로 만난 신입 동료 이모(27)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씨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어린 나이에 가정 경제를 혼자서 책임져야 했다.
스마트폰 부속품 판매로 매달 50만원씩 벌었지만, 이 돈으로는 꾸준히 들어가는 어머니 약값, 동생의 학비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늘어나는 빚에 허덕이던 박씨는 일당 10만원 짜리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말에 한달음에 회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는 다름 아닌 김씨. 이후 이씨 또한 김씨에게 배운 수법을 이용해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활동했다. 그 역시 대포통장 인출 일이 불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매달 수십만원씩 찍히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약값 명세서가 그의 어깨를 짓눌렸다.
김씨와 이씨는 순간의 유혹을 이겨내기 못하고 범행을 이어가다 결국 지난해 6월 초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붙잡혔다. 이들은 이후 각각 징역 1년 2개월, 1년씩을 선고받아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죄인 줄 알았지만 가계부채를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어갔다"며 "그렇지 않아도 6월 말까지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를 조사한 경찰 관계자는 "불법적인 걸 알면서도 범행을 지속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착한 청년이었는데 범죄로 내몰린 현실이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고모(31)씨는 수십 개의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일로 20대 청춘의 대부분을 보냈으나 내는 곳마다 우수수 떨어졌다.
'고졸 학력에 발목이 잡혔다'며 한탄만 하던 그는 지난 9월 17일 새벽, 자신이 살던 고시원 근처 공원을 배회하다 술에 취한 채 쓰러져 잠든 이모(47)씨를 발견했다. 고씨는 그의 뒷주머니 틈에 불룩 튀어나온 지갑을 슬쩍 빼냈고, 안에 든 현금으로 밀린 방세를 갚으려 했으나 사흘 만에 폐쇄회로(CC)TV를 추적한 경찰에 붙잡혔다.
고씨를 조사한 경찰 관계자는 "착하고 순진한 친구였는데 참 안타깝다"며 "도둑질을 한 뒤 어떻게 도망가야 할 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 보이스피싱 인출책 42%25는 '20대 청년'
이처럼 적지 않은 수의 취업준비생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면서 경찰에 입건되는 사례 중 20대 청년의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보이스피싱 범죄로 경찰에 붙잡힌 이들 중 20대의 비중은 단연 압도적이다.
CBS노컷뉴스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전자금융사범 위반사범 중 32.7%가 19세부터 30세 청년이었다. 이는 전체 2만1535명 중 7043명을로 다른 연려대 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씨와 이씨 사례와 같은 '인출책'에서 20대 청년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같은 기간 경찰에 붙잡힌 보이스피싱 인출책 985명 중 42.0%인 414명은 20대 청년인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