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선명령 같은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하지 않아 희생자들을 숨지게 했다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명사고의 구조의무와 관련해 인정된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2일 살인 혐의 등을 기소된 이씨의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이씨의 살인 혐의 등을 유죄로 보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확정했다.☞ 전원합의체 판결문 전문
대법원은 "대피나 퇴선명령만으로도 상당수 피해자들이 탈출해 생존이 가능했다"면서 "탈출이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한 행태는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고 밝혔다.
또 "익사를 충분히 예상하고도 퇴선요청마저 묵살하고 승객 등을 내버려 둔 채 먼저 퇴선해 선장의 역할을 의식적이고 전면적으로 포기했다"면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승객의 탈출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져가는 상황을 그저 방관만 했고, 승객들이 사망할 수 있다는 걸 예견하고도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씨에는 살인과 살인미수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선박, 업무상과실 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선원법, 해양환경관리법 위반죄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1등 항해사 강모(43)씨와 2등 항해사 김모(47)씨, 기관장 박모(54)씨에게는 살인 대신 유기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선장의 지휘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임무의 내용이나 중요도가 바뀔 수 있고, 선장과 같이 사태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관 3명은 향해사 2명에 대해서는 "선장을 대신해 구조조치를 지휘할 의무가 있었다"면서 살인죄를 인정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선장 이씨를 제외한 14명의 승무원에 대해서는 징역1년6월~12년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조타 미숙에 의한 것이었다는 검찰의 주장은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당시 세월호를 몰았던 3등 항해사 박모(23·여)씨와 조타수 조모(56)씨의 업무상과실 선박매몰죄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은 조타 미숙과 항해사의 지휘감독 잘못으로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울어지면서 전복됐다고 공소제기했지만, 조타기나 프로펠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을 합리적 의심이 남아있어 이들의 잘못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조타수가 정상적으로 변침을 시도하던 중 자신이 사용한 조타기의 타각보다 더 많은 각도의 타효(조타기의 지시된 타각을 유지하는 선체운동 효과)가 발생했을 가능성 ▲이런 현상은 조타유압장치에 설치된 밸브 안에 오일 찌거기가 끼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데, 밸브 고착 현상에 의해 타가 비정상 작동했을 가능성 ▲좌현 쪽 프로펠러만 작동하고 우현 쪽은 작동하지 않으면 추진력 차이로 세월호가 급격하게 우선회할 수 있는 점 등을 의심한 원심 판결은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선장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하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고, 그동안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것 같다"면서 "이번 판결은 앞으로도 사고가 발생하면 자신들의 목숨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