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문재인·안철수 싸움의 이솝우화 버전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여우는 한 동네에 사는 두루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하지만 넓은 접시에 담아 내놓은 음식을 두루미는 먹을 수가 없었다. 톡톡 부리로 접시를 쪼다가 힘만 뺀 두루미는 화를 꾹 참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루미도 여우를 저녁자리에 초청했다. 지난 저녁 자리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다. 두루미는 목이 긴 호리병에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렸다. 물론 주둥이가 뭉툭한 여우는 병 안의 음식을 맛볼 수가 없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얘기는 누구나 아는 국민 동화다.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뻔한' 교훈을 남기고 있지만, 여의도 상황에 적용하기 안성맞춤인 우화가 아닐수 없다.

바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얘기다.

극한대결로 이어지고 있는 둘 간의 핑퐁게임을 이솝우화 버전으로 옮겨봤다.

문 대표가 같은 당에 있는 안 전 대표에게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지도부 구성을 제안했다.

문안박 연대를 안 대표가 받으면 좋고 안받아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 대표는 구제적으로 문안박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수 있을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나름 최선의 안이라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이를 받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요구한 혁신요구안에 대해 아무말 없다가 뜬금없이 '같이 가자'며 문안박 연대를 제시한 것에 대해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손을 잡았다가 지난 대선 때처럼 들러리만 설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문 대표는 안 대표의 의심을 풀려는 노력보다는 문안박 연대가 '최선의 안'이라며 압박을 가했다. 진짜 문안박 연대를 성사시키는 것보다 제안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듯했다.

안 전 대표는 문안박 연대로 뭘 할 수 있을지 하는 회의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안 전 대표에겐 '문안박 연대'가 먹을수 없는 '음식'이었다.

이에 안 전 대표도 앙갚음을 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안 전 대표는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면서 문 대표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전대'을 요구했다.

자신이 주장한 혁신 실천방안에 미온적인 문 대표와 함께 '링'위로 올라 가 한판 승부를 벌이자는 것이었다.

안 전 대표도 문 대표가 받으면 동등한 자격으로 대결을 하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여기에다 운이 좋아 이기면 '금상첨화'였다.

문 대표가 거부하면 '겁쟁이'로 보일 수도 있는 방안이었다.

문 대표로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전대에 응할 경우 손해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문 대표는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한 제안이라고 보고 거절했다.

이솝우화에서 여우와 두루미는 한번씩 주고 받는 선에서 끝나지만, 문과 안의 주고받기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문 대표가 그동안 묵묵부답이었던 안 전 대표의 혁신 요구안을 다 수용하겠다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안 전 대표는 얼핏보면 자신을 배려한 것 같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과적으로 꼭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혁신안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 해볼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여우가 두루미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호리병에 음식을 차려놨지만, 정작 두루미를 초대하지는 않은 상황과 비슷했다.

이에 두루미(안 전 대표)는 여우(문 대표)와 계속 한동네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새로 적응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낯선 동네로 이사갈지, 여우를 안면몰수하고 그냥 살던 데서 살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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