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에 마스크팩까지…발끈한 정부에 발랄하게 저항한 시민들

'복면금지법'에 대한 기발한 대응…긴장한 시위대 녹여

5일 오후 서울 인사동 북인사마당에서 열린 '복면시위왕 청년학생 행진' 참가자들이 가면을 쓰고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5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대규모 행진은 우려됐던 물리적 충돌 없이 진행됐다. 기발한 소품이나 퍼포먼스를 준비해온 이들 덕에 곳곳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등은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연 뒤, 청계천, 종로, 대학로 등을 거쳐 4km 행진에 나섰다.

5만 명(경찰 추산 1만 4천 명)이 모인 이 날 행진에서는 밧줄이나 차벽, 물대포 등이 보이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14일 경찰과 시위대 간 격한 충돌이 벌어져, 경찰의 물대포에 맞은 농민 백남기(69) 씨가 중태에 빠지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던 1차 총궐기 때와는 달랐다.

경찰도 225개 중대 소속 경찰관 2만여 명을 배치했으나, 특별한 대치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 경력은 교통 관리 위주로 투입됐다.

시위대는 청와대가 아닌 대학로로 향했고, 경찰은 예상과 달리 차벽을 설치하지 않으면서 충돌 지점으로 예상됐던 '행진' 순서 또한 순조롭게 진행됐다.


특히 닭, 돼지, 탈모양의 가면을 쓴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무도회에서나 쓸 만한 가면이나 국제 해킹 그룹 어나니머스의 마스크를 쓴 참가자도 있었다.

심지어는 피부미용에 쓰는 '마스크팩'까지 쓴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복면이 아닙니다, 예뻐지는 중입니다', '소중한 나의 피부를 위해 티트리 물대포 부탁해요'라고 써진 피켓을 들고 있었다.

최근 복면 쓴 집회 참가자를 처벌하는 '복면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여당에 이같이 재기발랄한 방법으로 반발한 것.

행진이 시작됐을 때, 선두에는 주최 측 대표단에 이어 종교계 대표들이 섰다. 여기에 국회의원, 농민 단체, 시민 단체, 저소득층, 노동계 등이 뒤를 이었다.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들이 대학로 서울대 병원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대전에서 올라온 강은숙 목사는 "혹시나 일어날지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목사들이 맨 앞에 나섰다"며 "어느 누구도 다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두 그룹이 지난달 1차 총궐기에서 백남기 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았던 종로 YWCA회관 앞에 섰을 때, 맞은편에서는 별안간 한 무리의 '춤꾼'들이 나타났다.

탈을 쓰고 사물놀이 장난에 맞춰 퍼포먼스를 벌인 이들은 흥겨운 방법으로 백 씨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반발하고, 행진하는 집회 참여자들을 격려했다.

행진 구간에는 바람개비를 든 대학생, 코코아를 나눠주던 중·고등학생들도 있었다. 군 인권센터에서 나온 10여 명은 '의경은 인간방패가 아니다'라고 써진 피켓을 들고 서 있기도 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여하면서 시위대 선두가 3시간에 걸친 행진 끝에 목적지인 대학로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지막 행렬은 그제야 서울광장을 출발했다.

이에 따라 선두 대열은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동안 자리에 앉아 촛불시위를 열었고, 일부는 발길을 돌려 마로니에공원에 머물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출발한 민주노총 노동계 조합원들이 대학로에 도착한 뒤, 오후 8시 30분쯤 이들은 정리 집회를 열고 해산했다.

행진에 참여한 남덕현(58) 씨는 "1차 총궐기 때와는 달리 비폭력으로 진행됐던 이번 집회에서 우리의 시민의식을 체감할 수 있었다"며 "많은 집회에 참석해봤지만 이렇게 비폭력적인 시위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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