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직권상정'했다가 '사단'나면… 책임은 누가?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현 경제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없다"며 청와대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청을 거부했다. 반면 선거구 획정에 대해선 여야 합의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연말연시에 심사기일을 정하겠다"며 직권상정 의지를 밝혔다. (사진=윤창원 기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노동관련 5개법과 경제활성화법을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해달라는 요구를 막무가내로 하고 있다.

15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의화 의장을 압박한데 이어 16일엔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쟁점 법안들의 직권 상정을 거듭 촉구했다.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정 의장 집무실을 찾아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된 '직권상정 요구 결의문'을 전달하고 심사기간 지정을 통한 통과를 촉구했다.

여권이 야당의 분열사태로 정상적인 원내협상이 불가능하다며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해 직권 상정을 하라고 총공세를 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노동관련법 개정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선진화법 때문에 직권상정을 할 수 없다. 여러분도 그 법이 통과될 때 찬성하지 않았느냐"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5분만에 집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직권 상정은 초법적 발상으로 오히려 나라에 혼란을 가져오고 경제를 나쁘게 할 수 있는 반작용이 있다"며 "청와대는 법적 근거를 달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이 선거법은 직권상정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밥그릇 챙기기라고 비판한데 대해서도 "아주 저속하고 합당하지 않다"고 반격했다.


정의화 의장은 "고심하고 있으나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고, 새누리당은 "지금이 국가 비상시국이라"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 의장의 직권 상정 버티기에 대해 이인제 최고위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못하면 대통령의 긴급권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이장우 의원은 "국회의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낼 수 있다"고 비난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지난 19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때 발동한 이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일 국회, 특히 야당을 겨냥하고 있다.

노동관계법 개정과 경제활성화법 제정이 시급하다. 해를 넘기면 내년 4월 총선으로 인해 언제 개정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진다.

그렇지만 상임위 논의와 통과 등 관련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

국회의장으로서 국회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본분이자 기본 상식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구조조정이 현안으로 대두됐고 지금 수술대에 올리지 않으면 2~3년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여권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법안 한두 개 때문에 경제가 죽고 사는 것은 아닌데도 12월이 돼서야 호들갑을 떠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정부 여당이 평소 야당과 소통하지 않고 뒤늦게 당내 분란에 휩싸인 야당 탓을 하며 날치기와 다름없는 직권 상정으로 노동개혁법을 처리하려는 것은 야당·노동계의 반발을 피하려는 약은 수법으로 해석된다. 사실 직권상정에 의한 법안 처리는 가장 손쉽다. 여권이 지름길로 가자는 의도다.

노동계가 강력 반대하는 노동개혁법을 정의화 의장이 직권 상정했다가 잘못되면 그 책임은 정의화 의장이 뒤집어써야 한다. 정 의장 측은 이를 알고 있다. 지난 19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은 노동법을 날치기로 처리했다가 큰 파문이 일자 법안을 백지화해야 했다.

따라서 최소한 이달 말까지는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해 노력을 하되, 그래도 여의치 않을 땐 다각도의 방법을 구사하는 게 순리다.

야당도, "삼권분립 파괴니, 입법권 침해니, 국회법을 위반한 독재적 발상"이라고만 비난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법안 심의와 처리를 위해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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